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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력 게임    
글쓴이 : 김경숙    25-07-23 13:55    조회 : 993
   통찰력 게임....hwpx (70.7K) [0] DATE : 2025-07-23 13:55:25

통찰력 게임

                                                                                          김경숙

 

우리는 삶의 한쪽 구석에 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삶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고 마주하느냐에 따라 고통의 무게는 달라진다. 삶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방향성을 지니지만,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 어긋남 속에서 문득 이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하였다.

얼마 전, 마음이 통하는 도반 몇 명과 경남 함양에 있는 수련원에서 진행되는 12일 깨어있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통찰력 게임이라는 내면 여행이다.

 

5월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통찰력 게임을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다채로운 색상의 카드들은 혹여 나도 잡기 기질이 있나?’ 싶을 정도로 들뜨게 했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자,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는 진지한 내면의 여정이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안내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4종류의 카드가 쌓여있었다. ‘깨어있기’ ‘생명력’ ‘어울리기’ ‘위기 카드가장 적게 쌓인 건 위기 카드였다. 중앙에 놓여있는 윷놀이판에는 우주의 오행이 그려져 있었고, 둥그런 원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었다. 원은 무한을 상징했다. 이 게임은 먼저 이 무한한 공간에서 생명력 카드’ 3장을 얻어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이후 펼쳐지는 사각의 세상에는 깨어있기, 생명력, 어울리기, 그리고 위기의 함정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게임의 시작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주제를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여기서 안내자는 참여자의 무의식을 의식화로 연결하는 게임의 규칙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참여자가 주사위를 던져 얻은 카드엔 질문이 숨겨져 있었다. 안내자의 진행에 따라 목화토금수의 숨은 뜻을 맞추면 그 카드를 받고, 못 맞히면 벌칙이 주어졌다. 다른 도반들은 첫날 세 장의 카드를 모두 획득해 세상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나는 세 장의 생명력 카드를 얻지 못해 첫날밤을 무한에서 떠돌았다. 그다음 날에서야 풍요, 치유, 온화의 카드를 얻고 한바탕 놀아줄 윷놀이 판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윷놀이 판은 현실의 삼차원을 이차원으로 표식하였다.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선택된 자리에서 얻은 카드의 단어는 안내자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는 그 질문에 답하며, 마치 흐르듯 게임은 이어진다. 안내자의 질문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서,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깨닫게 하는 통찰로 이어지게 했다.

생명의 카드는 내면의 힘을 상징했다. 어떤 카드는 감정적 함정이나 트라우마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주기도 했다. 게임을 함께한 도반들은 각자의 리듬으로 자기 삶의 주제를 풀어나갔고, 동시에 서로의 통찰을 존중하였고 함께 경험하는 동반자였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다. 그 숫자에 따라 옮긴 자리에서 어울리기 카드를 뽑았다. 안내자가 그 카드를 읽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다.” 그 문장을 듣자마자 즉흥적으로 3초 안에 대답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의 내면이 출렁이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에 선택한 나의 주제는 욕망의 한 부분이었다. ‘재건축 대상인 아파트가 완성될 때까지 가지고 가고 싶다.’ 통찰력 카드와 무의식은 그 주제를 향해 계속해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도반들이 차례로 안내자와 주제를 다루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나쁜 대로, 그 사이의 무감각한 감정까지, 결국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감정들과 씨름하겠구나!'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울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었고, 머리 위에 문장 하나가 떠오르며 연결되었다. “이 모든 건 의미 없는 소모다. 집착하지 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무의식이 불쑥불쑥 보내왔지만 내가 놓쳐왔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카드와 질문을 통해 명문화된 것이다. 욕망은 세상의 덧없는 욕심일 뿐이고, 내 무의식은 이미 풍요로움임을 드러내 주었다. 그 문장은 내 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고, 낡은 사고의 틀을 허물며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다.

 

무한을 떠돌던 존재가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출구 없는 세계로 던져졌다. 삶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듯이 윷놀이 판의 숫자도 예측할 수 없었다. 관계 속 얽힘과 위기의 갈등, 그리고 때때로 마주하는 참나를 통해 얻게 되는 지혜와 통찰, 그 흐름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윷놀이 판의 사각진 세상,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출구 없는 순환이라는 내 세계관은 안내자의 한마디로 균열이 갔다. “어려움을 빠져나갈 출구는 문제를 해결하면 생긴다. 하지만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진다.”

 

내가 갇혀 있다고 느낀 세계는, 나의 인식이 만들어낸 에고의 미로였다. 출구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었다. 그 통찰의 순간은 내 안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문을 해제했고, 나는 그 문을 나와 자유로운 나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때로 철학을 찾고, 타인의 해석에 의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 미래는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오직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보다는, 그 문제를 끌어안고도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이제는 그 힘을 조금은 얻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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