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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죽,었,다    
글쓴이 : 백승희    25-10-31 19:05    조회 : 1,675

                                              

                                                아,,,,,

                                                                                                   백승희

 

실장님!!”

 

원장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부리나케 진료실로 뛰어갔다.

진료실 문을 여는 순간 심각한 원장님의 얼굴과 대비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노부부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신경과에선 자주 있는 일이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불안한 얼굴에 눈만 끔뻑이는 거구의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온몸으로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르고 늙은 할머니의 얼굴은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에 살짝 경련이 일고 눈에는 이내 눈물이 고였다.

급성 뇌졸중이다.

당장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 지금부터 11초는 생명과 직결된다.

상황의 위급성을 설명드리고 콜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난처해하며 할머니가 내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전화를 건네 받았는데 노부부의 아들이다. 일단 자신이 갈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자신이 직접 찾아와서 설명을 듣고 알아보고 조치를 할 거란다. 지금 당장 올 수 있느냐니까 안 된단다. “내일이라고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최대한 내일방문하겠다고 했다.

내일이요?......‘내일이 항상 있지는 않아요지금이요! 지금 가야 해요.”

전화기 너머 그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의뢰서를 챙기고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데 어김없이 아빠 생각이 났다.

이 할아버지만큼 장신에 거구였던 우리 아빠 생각이.

25년 전 나에겐 아빠를 부축할 기회도, 눈빛 한번 맞출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었다.

 

오늘일지도 몰라... 전화 꼭 받고!”

대학을 졸업하고 첫 병원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출근하는 내 등에 대고 슬픈 목소리로 아빠가 말했었다.

할아버지의 병이 위중해서 중환자실로 옮긴 지 며칠째였다. 그저께도 온 가족이 할아버지의 임종을 맞기 위해 병원으로 일제히 모였다가 일단 집으로 다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퇴근할 때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길래 오늘은 아닌가 보다 하고 친구랑 약속을 잡고 즐겁게 웃고 떠들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제야 휴대폰을 열어보니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고 다들 모여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가 계신 대학병원으로 급하게 이동 중인데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택시 타고 가고 있어. 금방 갈게!”

“......, 로사야... 너희 아빠가... 아빠가...”

 

.....!

할아버지의 임종을 맞기 위해 대기 중이던 아빠가 중환자실 앞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곧바로 MRI를 찍었고 수술도 바로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아빠의 뇌출혈 부위가 손대볼 수 없는, 그 당시의 기술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부위라 그렇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손 놓고 있다가 몇 시간 만에 멀쩡했던 아빠를 잃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살아나셨고 한달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

 

아빠를 허무하게 잃은 25년 전에도, 아빠 같은 뇌졸중 환자들을 돌보는 지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죽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삶은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라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작은 능력을 발휘하며, 때론 힘들지만 그보다는 큰 보람을 느끼며 수없이 많이도 아빠를 살렸다.

다음 날 노부부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뇌출혈이 아니라 뇌경색이었고 덕분에 빠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내가 감사하다.

 

퇴근길에 딸들에게 톡을 한다.

 

// 이쁜이들~ 오늘 밖에서 한잔할까?

// 그래, 근데 무슨 좋은 일 있었어?

// ! 엄청 좋은 일 있었어!!

 

치맥을 하고 딸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이 시간이, 이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게 내일이 또 주어진다면 눈을 뜨자마자 감사할 것이고 즐거이 출근 준비를 하고 반갑게 병원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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