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밉다! 부럽다?
백승희
“조◯옥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1년에 딱 한 번 병원에 온다.
시골집에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녀는 이미 화가 많이 나 있다.
아직 혈기왕성한 그녀를 몸으로 감당하고 욕 세례에 흠뻑 젖으며 여기까지 모시고 왔을 딸은 꾹꾹 누른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보통 치매약이라고 부르는 도네페질 성분의 약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치매 검사를 해서 그 결과가 건강보험공단이 정해 놓은 점수 기준을 충족해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녀가 병원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직원의 손에 이끌려 자동 혈압계 앞에 앉으면서도 그녀의 눈길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기실 소파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아있는 남편에게 꽂혀있다.
‘우~웅’소리를 내며 퍼프가 조여들자
“아야! 참말로! 왜 이렇게 아프게 지랄이여, 나 안 해! 얼른 집에 가!”
혈압계를 확 밀어내고 의자를 박차며 일어나는 그녀의 눈이 곧바로 소파를 향하는데, 남편이 거기에 없다!
“오지랄 거! 이 인간, 또 어디 갔어?”
눈이 뒤집힌 채 병원문을 열고 냅다 달려나가는 그녀를 딸이 바로 쫓아 나가고 10여 분이 흐른 후, 그들이 돌아왔다.
그녀의 야무진 양손에 한쪽 팔을 꽉 붙잡힌 채로 끌려 들어오다시피 한 그녀의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살짝 웃기까지 했다.
‘으~ 얄밉다.’
그녀의 남편은 평생 바람을 폈단다.
조◯옥님은 원래 말수가 없고 온순한 성격이셨단다. 남편의 반복되는 외도와 무시 속에서도 큰 소리 한번 안 내고 참고만 살아오셨단다.
그랬던 그녀의 정반대되는 성격의 변화가 그동안 억눌린 감정의 표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치매는 정신병이 아니다. 뇌 질환이다. 뇌 손상에 의해 성격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뱉어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남편에 대한 잡도리를 원 없이 해대는 것이 괜스레 속 시원하고 마땅히 그래 봐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녀의 딸은 좀 힘들지라도…
남편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 때문에 검사실 한쪽 구석에 의자를 따로 마련해 남편분을 앉히고서야 검사가 시작되었다.
8년째 그녀를 만나온 터라 친숙한 분위기에서 순조롭게 검사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검사를 시작한 지 20여 분이 지나자 그녀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랐고
“그만 혀! 뭐 헌다고 이 지랄들이여! 나 집에 가야 헌다니께!”
나에게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손까지 올리며 겁을 주지만 나는 그녀가 무섭지 않다. 나는 그녀를 안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을.
그녀는… 그래봤자 엄마다!
내가 딸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한다. 미소가 번지더니 점점 광대뼈가 올라간다. 딸에 관해서라면 그녀는 별 걸 다 기억하는 여자다.
부모의 뇌에서 자식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순 없다. 그 아무리 독하고 힘이 센 치매라도! 내가 봐 온 치매는 생각보다 허점이 많다. 인간이 치매를 이길 날이 머지않아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옥님이 자랑스럽게 딸을 앞세우고 남편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나간 그 문으로 허리가 반으로 굽은 백발의 한 남자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들어오고 있다.
“고◯분이 왔습니다”
유난히 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병원 대기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그의 옆에는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느리게 껌뻑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그녀가 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온다. 세레브레인이라는 치매 주사를 맞으러.
아들이 한 명 있는데 멀리 살아서 병원에 온 적은 없다. 두 내외가 고생고생하며 위험 속에 병원으로 오시는 걸 알기에 주사 치료를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이자고 해도 할아버지가 반대하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치매가 금방 나을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주사실로 들어가면 그가 본격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타고나길 목소리가 작은 나는 배에 힘을 팍 주고 목청을 돋운다.
“어머님은 좀 어떠셨어요?”
“저이가 잠을 잘 못 자!”, “이번에는 변비약을 처방했으면 쓰겄는디~”, “잘 먹질 않어. 왜 그런 겨?”, “그랴도 어제는 웃고 말도 곧잘 했어, 나아진 거지? 그치?”
그는 양쪽 청각 기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보청기는 있는데도 안 쓰시고 음성 확대기를 들고 다니시는데 그걸 통해 말씀을 전달해 봤지만 잡음이 너무 크고 고장인 건지 별 효과가 없다. 진료실에 들어가지 않는 그를 대신해 원장님께 어머님 상태를 전달하고 원장님의 답변도 그에게 전달한다.
할머니가 주사를 맞는 40여 분간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단잠에 빠지신다. 어떤 불편한 의자라도 머리만 대면 주무신다. 그의 잠이 너무 노곤하고 깊어서 할머니의 주사를 더 천천히 놓아 드린 적도 있다.
주사를 다 맞은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앉혀 드리자 할아버지가 후다닥 잠에서 깨신다.
멀뚱멀뚱 정면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을 쭉 앞으로 빼고 모로 눕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신다.
“ 자네 왔는가? 어째 더 이뻐졌구만 그려~허허”
고목같은 할머니가 여린 꽃잎처럼 웃으신다.
이 말이 맞지 않겠지만… 이 말밖에는 없다.
‘부럽다.’
언젠가 2주가 지나고, 또 2주가 지나도, 저 병원문을 열고 두 분이 나타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살아있으나 생이별을 해야 하거나 영원한 진짜 이별을 해야 할 날이 곧 오겠지. 그날이 너무 일찍이진 않기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치매가 더 나빠지지 않고 할아버지의 기력이 아직은 다 하지 않아, 두 분이 부디 조금만 더 함께이면 좋겠다고 어쩌면 이기적일지 모를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