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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딸은 나를 닮아서.2    
글쓴이 : 김혜숙    25-11-11 17:13    조회 : 1,352

 

                               우리 딸은 나를 닮아서

 

                                                                               김혜숙(미아반)

 

새벽부터 떼로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에 늦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다. 무더위에 밤새 뒤척여서 그런지 일어나는 게 힘들다. 수년 전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 했던 그해에도 귀에 거슬리도록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무더운 8월이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몰랐던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이 두고두고 뼈에 사무쳐 울었고, 아버지가 떠난 후에야 바위 같았던 울타리에서 벗어난 허탈감에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에 나는 절규했다.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6,25전쟁 휴전 직후 스무살 차이의 맏형님과 함께 친척이며, 친구를 비롯해 사돈의 팔촌까지 수 십명을 거느리고 남하했다. 일주일 만에 돌아가겠다고 작정하고 넘어온 길이 단 열흘 만에 삼팔선이 가로막혀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실향민이 되어 남한에 자리를 잡았다. 이북 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단결력이 좋아서 그들끼리만 뭉쳐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될 정도였다.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망감을 차츰 극복해가면서 실향민들과 연합하여 가파치(가죽구두 기술공) 여러 명을 고용하여 가죽구두 공장을 시작했다. 사업은 날로 승승장구하였고 돈도 솔솔 잘 벌렸다. 그 시절에는 은행 출입이 원만하지 않던 시절이라서 아버지는 그날그날 들어오는 현금을 신문지나 누런 장판지 같은 허름한 종이에 말아서 사업장이나 집안 구석에 대충 던져두었다고 했다. 날마다 쌓여 가는 돈을 보면서 남한에 뿌리내리고 살 희망을 갖게 되니 고향 돌아갈 꿈을 포기 할 정도로 만족해했고 매사가 순탄하기만 했다.

금상첨화격(錦上添花)으로 이듬해 겨울.

딸이 태어나면서 절망과 시름을 거의 잊고, 아버지는 눈만 뜨면 주변에 딸 자랑하기에 바빴다.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사업도 기대보다 잘되고 딸도 생겼으니 이 구석 저 구석에 방치해 두었던 돈으로 집을 장만할 계획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현금다발들을 모아 한 뭉치로 만들어 구두공장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날이 밝는 대로 집을 계약하리라 마음을 먹고 설레는 밤을 보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소히 하꼬방이라는 일본 적산가옥이 밀집해 있던 신당동에서 살았다. 같은 채의 적산가옥 2층에 할머니가 세 들어 살았다고 했다. 그 노인이 한 밤중에 촛불을 당기다가 실수로 불을 냈다. 나무로 지은 하꼬방은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올랐고 같은 건물에 붙어있던 아버지 구두공장도 당연히 타오르면서 애지중지 모아 두었던 돈뭉치까지 송두리째 재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덮친 화마에 아버지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꼬질꼬질한 광부의 모습으로 얼굴에는 눈물 콧물로 뒤범벅되어 참담했고 주위에서 말려도 소용없이 공장 안으로 뛰어들어 잿더미 속에서 타다 만 집기류를 끄집어내어 놓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몰려든 양아치(망태할아버지) 떼거지들이 번갈아 가며 연신 주워 담아 갔다고 했다. 1년 남짓 번창하던 아버지의 사업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화재로 재가 되고 말았다. 슬픔을 달래는 방법이 술뿐이었다. 사업은 불로 망하고 술과 눈물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다시 반년 만에 지인의 설득으로 각오를 다잡고 문화재관리국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새 삶을 시작했다.

겨우 추스른 기쁜 현실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7월 복중에 돌을 석 달 앞두고 딸내미가 병이 났다. 일주일, 열흘이 지나도 40도에 가까운 열이 몸에서 내리지 않았다. 온갖 재롱에 이쁜 짓만 골라 하던 아기가 심한 고열로 인해 관절 마디 마디는 다 빠지고 몸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안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복중 날씨이지만 하는 수 없이 목화솜 이불에 아기를 싸 안아야만했다. 열을 내리기 위하여 유명하다고 소문난 병원은 모조리 찾아 다녀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절망감에 또다시 술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의 절박한 고통 앞에서 어머니는 작은 슬픔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안 가본 병원을 찾아서 어머니는 어차피 못살 것 같으니 병명이라도 알고 떠나보내고 싶다고 하니, 의사는 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검사를 받고 나면 따님의 몸은 반쪽이 자라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이 검사를 받아 보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단다. 원이나 없이 병명이나 알고 싶습니다. 의사는 어머니가 해달라는 대로 두 번도 말리지 않고 문어처럼 늘어진 아기의 오른쪽 허리를 과감히 딱 소리가 나게 꺾더니 아기의 비명과 동시에 오른쪽 척추에서 커다란 주사기에 노란액을 빼내고 나서 분석한 결과 소아마비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쉬움에 포기 못하고 지인의 소개로 침으로 전국으로 알려졌다는 종로에 있는 한의원의 백발 노인한의사를 찾아갔다.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6개월 동안 돌도 안된 아기 몸뚱이에 침을 놓았다고 했다. 아기는 비지땀을 흘리며 숨이 멎을 정도로 울고 엄마도 피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여섯 달째 되는 어느 날 한의사는 더 이상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오십시오. 라며 집에 돌아가면 그냥 가만히 눕혀만 놓으세요. 자꾸 안으시면 안돼요. 세월이 가면 저절로 회복될 겁니다. 그리고 열 살이 되는 해에 걸음마를 하지 못하면 평생을 앉아 지낼 겁니다. 하더란다.

딸내미의 병은 전쟁 이후에 미국에서 건너 온 신종 바이러스인 소아마비라는 병명을 알고나서 침술로도 고칠수 없는 병임을 알고 그제서야 치료를 포기했다.

아버지는 모든 걸 체념한 채 공무원 생활에 충실하면서 노력은 하였으나 여전히 술을 끊어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간경화로 51세로 생을 마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 직장을 유지했고 오로지 건강하지 않은 딸의 장래가 걱정되어 무엇으로 해주어야 하나 평생 숙제였다. 소설가로 키우겠다며 월급만 타면 할부로 책을 사날랐고, 소설가는 너무 힘들 것 같으니 여류 바둑기사로 키워야겠다면서 항상 궁리를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딸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너는 나의 햇살, 하나뿐인 사랑.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흐린 날에도 날 기쁘게 하지.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눈빛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 딸은 나를 닮아서, 머리도 명석하고, 상냥하고, 예쁘다고 하셨다. 누가 뭐라든 친척이든 지인이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이 멈출 줄 몰랐다. 나도 덩달아 날마다 즐겁고 웃으며 신이나 있었다. 자존감도 높았다. 세상에 겁나는 일이 없었다. 아들은 뒷전이고 딸인 나에게만 유독 관심을 쏟았던 아버지에게 불만이었던 어머니가 애가 커서 자신의 불편함을 알고 절망감이 생길 때 어떻게 극복하라고 아이 허파에 바람을 넣느냐고 슬그머니 이유를 들어 불평을 하면서 잦은 다툼도 종종 있었다.

아버지는 기질이 강직하고 성격이 불같았다. 사람들 행동 하나에도 잘못 보이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재차 물을라치면 불호령이 떨어져서 아버지 근처에는 누구도 얼씬하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소통은 항상 내가 나서야만 해결되곤 했다. ‘아버지 그게 뭐에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하면 세상 더없이 자상한 표정으로 소상히 알려주시면서 얼음장 같았던 분위기에 금세 평화가 찾아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

밀려오는 먹구름이 두려워 나는 오랫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살아지면서 살아보니 내 가슴속에서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햇살 같았던 미소는 늘 웃음으로 남아있다. 넘치는 애정에 세뇌되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거침없이 당당하게 잘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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