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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성장하게 한 시간    
글쓴이 : 김희정    26-05-17 18:07    조회 : 9

                                                    나를 성장하게 한 시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복도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매일 길고 지루한 입시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니 말이다.

이번 주는 딸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상담 기간이다.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교사 연구실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해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래, 이곳에 꽃처럼 예쁜 너희들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구나. 여고생에서 선생님 그리고 엄마가 되어 다시 찾은 이곳에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큰딸: “학교 가기 싫다.” 한 여성이 식탁 앞에서 푸념한다.

엄마: “가야지. 네가 선생님인데!”

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 여성이 학생이 아닌 선생님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막상 출근한 선생님은 아이들을 열심히 돌보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한다. 몇 해 전에 에너지 음료의 광고를 보고 기발한 반전에 웃음이 났다.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건 학생뿐만이 아니었구나. 나도 교직 첫해에 이와 같은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나의 첫 근무지는 남자고등학교였다. 별난 남자아이들을 과연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에도 나는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학생 수가 줄어 한 반에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있지만 내가 근무했을 때만 해도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교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누나뻘 되는 사람이 남자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오자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한 달 동안 서로의 탐색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그 시기 남자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 교시에는 잠이 덜 깨 반수면 상태로 있다가 3교시엔 자고 일어나 반짝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이 되면 허기진 배를 달래러 매점으로 달려간다. 배를 채우고 온 4교시엔 공부와 장난을 반복하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밥을 빨리 먹고 자유시간을 더 갖기 위해 아이들은 또다시 급식실을 향해 질주한다.

물론 내 눈엔 예쁜 아이들이 더 많이 있다. 늘 웃으며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아이, 수업 내용을 질문하는 아이, 주어진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며 공부하는 아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웃게 만드는 아이,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 나에게는 모두 멋진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있기 마련이다. 초년 시절에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난제였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등지고 판서를 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한 아이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다. 친한 아이와 함께 앉아서 장난치며 수업 분위기를 흐릴 게 분명해 보여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반항하며 버티는 아이를 혼냈더니 결국에는 욕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교실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얼음처럼 서 있었다. ‘이런 말을 듣자고 선생님이 되었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무력감마저 들었다.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차마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일 수 없어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무실로 갈 수는 없어 일단 교사 휴게실에 가서 눈물을 훔쳤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쯤 노크 소리와 함께 한 학생이 들어 왔다. 그 반의 학급 회장이다. 내가 울먹이며 나가자, 내 뒤를 따라왔던 것이다. “선생님, 그 아이가 선생님께 욕한 건 아닐 거예요. 남자아이들은 말끝에 습관처럼 욕을 붙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자신이 대신 사과를 하겠다고 한다. 17살 아이가 그렇게 나를 토닥여주었다.

학교에서 성장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열정은 넘치는데 경험이 없어 좌충우돌하는 20대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소수의 아이들이다. 꾸중하면 눈을 세모지게 뜨고 반항하는 십 대 남자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수업을 마치고 언짢은 표정으로 교무실에 내려오면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다쳤을 거라 짐작하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던 선배 교사가 있었다. 아이들을 꾸중할 때는 잘못에 대해서만 정확히 지적하고 절대 교사의 화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초년 시절에는 주도권을 뺏길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그런 아이와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수업권까지 방해할 수는 없어서 수업 후 교무실로 내려오게 했다. 일단 숨 고르기를 한 후, 교무실에서 다시 만난 아이는 교실에서와는 달리 한없이 얌전해져 있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고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들었구나 하고 공감해 주었더니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아무리 잘못한 아이라 해도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일이 그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딸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둔 분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새 학기에 학부모 상담을 갔더니 ㅇㅇ 같은 모범생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라는 말이 상담의 전부였다. 배정받은 상담 시간은 20분 남짓인데 선생님은 교사 생활의 회의와 한탄에 가까운 자신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쏟아 냈다. 교권의 추락과 공교육의 붕괴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자,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담임선생님이 바뀌었어요.”라고 한다. 그 선생님은 정년까지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생들에게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만 말했다는데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여전히 학교에 있었다면 어떤 교사가 되어있을까? 비록 초년 시절의 열정은 옅어졌을지라도 타성에 젖은 무기력한 교사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대신 아이들이 힘든 시기를 지나며, 또래든 가족이든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울 때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가끔은 아이들의 무례한 말과 행동에 마음을 다치기도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다려주는 것도 결국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이 바라는 교사는 의무감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좋은 어른일 테니까. 아이들 역시 선생님의 이야기를 꼰대스럽다고 밀어내지만 말고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긴 터널을 지날 때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조금은 내 주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우연히 제자를 만나기도 한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쏟았던 그날, 초보 선생님을 위로해 주던 아이는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에서 아이들의 근황을 접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유익한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의사가 된 제자도 보았고 대중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뮤지션이 된 제자의 소식도 접했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통제 불가능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가 회계사가 되어 결혼한다는 소식도 동료 교사를 통해 듣게 되었다.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어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들 앞에서 내가 오히려 작아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모범생이었든 장난꾸러기였든 아이들은 잘 성장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이 왜 일을 그만두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오래 기다려온 너희들이 한꺼번에 둘씩이나 선물처럼 왔고 그런 너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하러 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딸이 엄마, 난 엄마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거예요. 내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단지 아이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일과 육아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이번엔 어떤 결정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머뭇거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시 태어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택할 것이다.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큰 열정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르치는 일을 사랑했고 나의 젊은 날 중 빛나는 시기가 있었다면 그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일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와서 방전되기 일쑤였지만 또다시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 덕분이었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아이들로 인해 힘을 얻는 날들이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하교하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또다시 학원으로 독서실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다. 시험의 고비마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힘든 시간을 잘 버텨가고 있는 아이들이 단지 줄 세워진 성적만으로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그리고 이런 아이들이 있는 학교가 차가운 말들이 오가는 곳이 아닌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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