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김양아
바람이 계절의 넷째 마디를 연주하고 있다. 야물게 겨울눈(眼)이 박혀있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흔들린다. 하지만 어느 봄날 눈부시게 목련꽃을 피워낼 때까지 묵묵하게 이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묵은 먼지를 닦아내다 문득 가구 위에 놓인 작은 나무액자를 집어들었다. 가운데 경첩을 중심으로 한 쪽엔 색동옷을 입은 두 딸이 얌전하게 앉아있다. 다른 쪽엔 트리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웃고 있다. 사각의 틀 안에 담겨있는 그 겨울의 온기가 가만히 손끝에 전해져왔다.
무의식의 망막에 맺혀진 내 가장 오래된 겨울은 언제일까? 켜켜이 쌓인 낡은 인화지, 기억의 지층 그 바닥까지 내려가 본다. 어린 계집아이는 뱅그르르 얼어붙은 고드름이 햇볕에 녹아 똑똑 눈 위에 동그랗게 홈을 만들던 그 스타카토의 시간 속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 후 한 바퀴씩 돌아오는 겨울은 이미 그 겨울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이었다.
참 많은 모퉁이를 돌고 돌아 왔다. 하지만 길은 늘 거기 닿아있었나 보다. 인사동 뒷골목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탯줄 같은 그 골목으로 향했다. 거친 시멘트 담벼락에 담쟁이 발자국이 찍힌 막다른 집, 나무대문에 매달려 있는 둥근 쇠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기꺼이 그 품을 열어주었다. 다시 두드리면 시간의 녹슨 빗장이 풀릴까? 삐걱이는 대문을 열고 막 튀어 나올 것 같은 유년이 저물녘 '밥 먹어라' 엄마 목소리가 울리던 그 골목에 스며있다. 그래서일까 왠지 마음 한 켠이 허전해 질 때면 그 곳을 찾곤 한다.
비록 큰 길과 건물들은 너무 많이 변해 낯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골목은 고향의 둥지처럼 반갑다. 불쑥 뚫고 나오는 기억이 온통 덧입혀버려 현실이 비현실적이 되는 곳,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구석구석 더듬다보면 마치 되감기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것 같다. 혜화국민학교, 아림사 문방구, 아카데미 빵집, 엘리 음악학원...등이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가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우리를 키웠던 쭈글해진 골목은 탱탱하게 되살아나고 골목 입구로 마중 나오던 엄마는 가로등 되어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골목마다 누비다가 다시 그 긴 길의 꼬리를 끌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낮게 걸린 초승달이 가늘고 웃고 있기도 했다.
신정에 시댁엘 갔더니 시아버님께서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형제들 앞앞으로 하나씩인 것 같았다. 열어보니 흑백사진이 가득 들어있었다. 사진첩을 정리하셨단다. "이런 것 두면 누가 보겠누? 이젠 너희들 가져가거라. " 집에 돌아와서 펼쳐놓고 보다가 문득 장식장 아래 넣어둔 우리집 사진첩이 생각났다. 아이들 어릴 때는 꽤 부지런히 따라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디카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첩을 여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그나마 찍은 사진들은 봉투에 넣어둔 채 쌓여있으니 이참에 사진 정리를 하려고 앨범 몇 권을 사들고 왔다. 두 딸에게도 각각 앨범을 정리해서 건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스무 해가 훌쩍 넘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이가 태어나 눈맞춤하고, 뒤집어 배밀이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초등학교 운동회... 그때 그 표정과 그날의 날씨까지도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아련하고 풋풋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앨범에 끼워 넣었다. 완성된 앨범을 큰딸에게 보여주었더니 지난 여름 태어난 손주의 사진을 들고 와 자신의 백일 사진과 비교해본다. 그리곤 두 개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찍은 다음 폰으로 보내준다.
삶이란 눈동자 속에 저장된 것들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되돌이표다.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 매달린 모빌의 버튼을 누르자 오르골 음악이 흘러나온다. 조금 전까지 눈맞춤하며 방긋거리던 손주녀석은 지금 빙그르르 움직이는 나비를 쫓고 있다. 아직 덜 여문 눈동자에 무엇을 저리 담고 있을까? 날갯짓을 따라 움직이는 몸짓과 옹알이에 먼 시간 속 낯익은 장면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휴대폰 동영상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이 순간이 내 눈동자 디카에 가득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