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 둔 사이
이종빈
열 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겨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자신을 불나비라고
불러달라던 소녀. 갈망하는 대상을 향해 온 몸을 내던지며 살고 싶다는 당돌함과 맹랑함에 빠져 들었다. 입시의 마지막 관문인 논술고사 준비를 하며 짬짬이 만났다. 가끔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서 레몬차를 마셨고, 다른 손님이 없으면
몰래 입을 맞췄다. 분명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딱 하나만 기억이 난다. “2월 18일까지만 만나자.” 본인은
재수를 결심했고, 나는 대전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니, 억지로
연인 사이를 유지하는 대신 기한을 정한 채 만나다가, 이후에는 각자의 삶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대사 같았다. 영화 대사를 현실에서 내뱉는 모습은 마냥
매력적이었다. 매력적인 여인의 말은 달콤한 명령이었고, 나는
명령에 복종하고 싶었다.
약속한 날이 왔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이내 낯선 도시에서,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신분이 되었다. 두 달 남짓의 만남은 마음
한 켠에 밀어둔 채 정신없이 방종을 누렸다. 6월 즈음 그녀가 갑자기 떠올랐다. 만나기로 했다. 늦은 밤, 수수한
차림의 그녀가 재수학원에서 나왔다. 오랜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았고 가게들도 문을 닫은 시간이었기에, 걸어서 집에 데려다 주겠노라 했다. 걷기에 좋은 초여름의 밤이었다.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놀란
내가 “우리 손 잡아도 되는 사이야?” 했더니, “친구끼리도 손 잡잖아” 란다. 단호한
말투가 뿜어내는 묘한 설득력에 굴복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순순히
친구가 되었음을 받아들였다.
또 한동안 아무 교류가
없었다. 겨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온 세상에 사랑이 넘치는 마당에 기말 과제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불현듯 외로움을 느꼈고, 그녀가 생각났다.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문자를 보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다시 본 수능은 잘 치렀을지 궁금했다. 모든 과정이 잘 끝났기를, 그래서 기분 좋게 고생 많았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잠시
후,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 할 사인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그냥 핸드폰을 덮어 버렸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몇 년 간,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마지막 문자는 무슨 의미였는지,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잘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6개월 사이, 그녀와 내가 손 잡아도 되는 사이에서 성탄 인사가 어울리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언제든
그 끈을 당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막연한 믿음은 자신감의 산물이 아니었다. 안이하고 수동적인 자세에 불과했다. 나는 교제의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가 우리에게 붙인 이름, 정한 규칙에 순종하려고만 했다. 같은
시간 동안, 그녀는 내 소극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테고, 그녀에게
나의 존재는 의미를 잃어갔으리라. 어쩌면 관계는 끈이라기보단 곳간이 아닐까? 내가 그녀와의 곳간에 쌓았던 것은 텅 빈 시간뿐이었다. 휑한 곳간에
대고 나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객쩍은 외침은 그녀에게 가닿는 대신, 되돌아와 아직까지 나를 비웃고
있다.
이제
핸드폰에는 ‘불나비’도, 차가운
문자도 지워지고 없다. 친구, 동기, 동창, 선후배 등의 이름으로 나와 이어진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스무 살의 그녀는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진다.
애써 그녀를 떠올리려 할 때마다, 그녀 외에도, 내버려
둔 사이 나도 몰래 사라져버린 관계가 참 많으리란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럴 때면 괜스레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