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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외치고 싶어    
글쓴이 : 강촌정영임    16-08-01 21:10    조회 : 7,582

아, 외치고 싶어

정영임


  수요일 아침미사를 마친 나는 부지런히 헬스장에 가서 적당히 운동을 끝내고, 샤워 후 부지런히 집에 와서 머리 중앙에 세트 4개를 말아놓고 정성을 다해 화장 아니 분장(?)을 하면서 연신 시계를 본다

  9시 20분 집을 나선다.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은 웃음 가득. 입으론 오늘 들려줄 이야기를 중얼 중얼 하면서 난 외치고 싶다. ‘난 예쁜 친구들을 만나러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라고. 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이촌 전철역은 출근하는 사람들이 빠지고 조금은 한가한 시간에 계량한복을 입은 고은 할머니(?)가 서 있으니 힐끗 힐끗 쳐다본다. 어떤 용기 있는 이가 "어머, 멋지세요.“ ”예쁘세요.“ ”어쩜 머리 색깔이 너무 멋지세요.“ ”곱게 나이 드시네요.“ 이런 이야길 수요일 하루 중 한 번 이상은 듣게 된다. 이런 소릴 들으면 난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더욱 더 조신해진다.(난 절대로 조신하지 않다)

  배에 힘을 빵빵히 주고 이수역에서 내려 14번 출구로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재래시장이 나온다. 시장은 크지 않고 한 400m쯤 길게 한 골목만이 시장인데, 없는 게 없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정말 온갖 야채, 과일, 생선 등 보기 힘든 것들도 가끔은 볼 수 있다. 어떤 날은 상어 한 마리가 통째로 가판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놀라워하면서 입씨름을 하고 있다. "어떻게 잡았대요. 어떻게 팔아요." 등등

 아유, 생선 집 아저씨 오늘 입 아프겠다. 이 시간 상인들은 물건들을 진열하느라 정신없다. 생선에 물을 뿌리는 이, 과일을 진열하며 가격 팻말을 과일 사이에 세워서 꽂는 이. 오이 호박, 고추 등을 빨간 풀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겹겹이 쌓아 올리는 이. 그 사이 사이에 옷가게, 빵집, 곡식가게, 정육점, 약초가게, 손자장 집. 손자장면이 3000원이라 써있네. 몇 번이나 먹어보고 싶었으나, 수업이 11시에 끝나니 너무 이른 점심이라 먹어보진 못했는데 언젠가는 꼭 맛봐야지.

  여유를 부리면서 구경하다보니 유치원 앞이다. 유치원은 단독 주택들과 한 골목에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유치원 입구엔 폭이 1m도 안되는 땅에다 스티로폼을 놓고 그 위에 빨간 플라스틱 통에다 토마토를 심어 놓았는데 제법 주먹만한 것들이 파랗게 주렁주렁 열렸다. 이번 봄에 예쁜 친구들이 선생님들과 모종을 심었겠지. 이걸 심는 날, 어린 친구들은 얼마나 웃고, 울고, 떠들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토마토가 시간이 가면 빨갛게 익어가듯 나의 천사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유치원 건너편은 마당이 거의 없는 주택들이 한 줄로 쭉 있는데, 한 집도 빠짐없이 빨간 큰 고무통에 고추, 상추, 쑥갓 몇 포기 싹을 심어 놓았다.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이 경이롭고 신기하다. 어떤 집은 씀바귀도 심어 놓았다.

  맞아, 상추쌈에다 씀바귀 한 잎 놓고 고추 부러뜨려 한 쪽 놓고 쌈을 먹든지 좀 더 멋진 날은 고기 한 점 놓고 ㅋㅋ. 난 왜 먹는 생각을 할까? 이 집 주인은 한 잎 한 잎 자라는 생명을 느끼고 보는 재미로 심은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얼른 몸을 돌려 유치원의 토마토를 본다. 토마토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할머니, 나이 드시면 식욕이 준다는데, 할머닌 아닌가보죠"? 난 못들은 척 얼른 유치원 벨을 누른다.

 실장님이 나오면서 "역시 오늘도 할머닌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군요. 멋지세요." 고맙다고 인사하고 교실 문을 열면 와~~이야기 할머니 오셨다. “이야기 할머니~~이 할머니, 할머니. 우리 외할머니 안경하고 색깔이 똑같아요. 입술이 예뻐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여기저기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환호를 어디에서 받겠는가? 연예인이 따로 없다. 아유~예쁘고 귀여운 것들~~ 오늘은 보너스까지 있네. 수일이란 친구는 엄마가 유치원 보내려면 무척 힘들어 했단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울고 떼쓰는. 수일이를 겨우 겨우 달래 보냈는데, 언제부턴가 수요일은 이야기 할머니 오시는 날이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떼쓰지 않고 간다고. 엄마가 이야기 할머니께 고맙다고 전해 달라면서 인사하고 갔다네.

  아~~난 외치고 싶다. 난~~~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라구~~~ 정말로 정말로 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라구~~~~


홍성희   16-08-10 16:09
    
첫 글 올리신 것 축하드립니다!
처음 학기에 자기소개서  내시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재미있게 잘 쓰신거보면
이야기만 잘 하시는게 아니라 글도 잘 쓰실거란 예감이 듭니다~
느즈막히 만난 '수필'이라는 인연 오래 유지하시길 바래요!
진솔한 글 많이 쓰세요.. 화이팅!
박은지   16-08-10 16:55
    
맞아요 이리 빨리 스타트를  하시다니~~  놀라워요  긍정적인 에너지 내뿜는 좋은 글 마니 써주세요  글구 이제부터 짝은 저인거 당근 아시지용?♡♡
박화영   16-08-10 23:51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하시더니만 어찌 이리 재미나게 술술
이야기들을 풀어 내시는지요?
본인 스스로에게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 용산반에서도 그런 행복과 희열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거예요.
함께 가보아요 선생님~
김미원   16-08-11 07:51
    
처음 내신 소개글부터 대박(경박한 표현 죄송합니다)입니다.
목소리도 낭랑하시고 표정도 밝아 어린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내시면 될 듯 합니다.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강촌정영임   16-08-14 19:48
    
여러 선생님들의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리며 용기를 내 봅니다.
 차 마시면서 용기를 주시지 않았으면 엄두도 못 냈죠
 반 분위기가 처음 발을 디딘 저에게 너무 푸근 했습니다.
 늦게 만났으니 더 뜨겁게 사랑해 보고 싶습니다. 수필이란 친구와 ㅎㅎ
 여러 가지 배려 감사합니다. 다음 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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