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녀시대’를 걸으며
[한겨레] 마음이 답답할 때는 버스를 타고 지하상가에 가서 윈도쇼핑을 즐긴다. 명품과 거리가 먼 나는, 단돈 5000원짜리 티셔츠를 충동적으로 사 입기도 하고 일명 '삼천냥짜리' 목걸이 고르는 재미에 푹 젖기도 한다. 주말의 지하상가는 늘 인산인해다. 짙은 쌍꺼풀에 마스카라를 하고 분을 바른 중고교 여학생들로 넘쳐난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픈 그네의 심정을 헤아릴 만하지만, 제아무리 보드랍고 하얀 파우더라도 여린 피부를 감추진 못한다.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여고 시절, 야간학습 시간이면 희뿌연 형광등 밑에서 입술이 더욱 돋보이도록 서로 다투어 글로스를 바르곤 했다. 짝사랑하는 선생님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우리는 귀밑머리에 물을 묻히고 입술에 힘을 주었다. 사모하는 문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미술 선생님….
아이들은 제각각 연정을 품은 '님'들의 과목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반짝이는 입술, 형광등보다 더 희고 상기된 낯빛으로 선생님의 음성에 주목하였다. 행여 내가 좋아하는 스승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밤새 잠을 설치며 그 과목만을 복습하였다. 학교가 파하면 얼음물로 교복을 주무르고 밥도 안쳐야 했지만, 나의 첫 두근거림의 시작을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하나의 교과목만큼은 100점을 맞고 싶었다. 다른 과목의 점수가 낙제가 될지언정, 좋아하는 스승의 기억에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질 수만 있다면 결손가정의 소녀가장이라 놀림을 받아도 괜찮았다.
내게도 고교 2학년짜리 딸애가 있다. 아이는 늘 학교교육에 불만을 토로한다. 교복은 왜 자주 바뀌는지, 하기도 싫은 방과후 수업은 왜 자꾸 강요하는지, 어차피 치맛단을 줄여 입을 게 뻔한데 왜 빼앗아 가는지 등에 대해 울먹이며 짜증을 내곤 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학생일 땐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의 우상이었다"며, 스승이란 어쨌든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 타이르건만 견해의 차를 좁히기엔 역부족이다.
짙은 화장을 한 어린 소녀들에게 이런 감정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세대차이, 혹은 시대적 착오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엄마로 자라버린 나는, 전혀 다르게 성장하는 내 아이에게 선생님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 아이들은 너무 많은 케이블에 노출되어 있고 너무 예쁜 아이돌 스타에 열광한다. 아이들은 문학에 앞서 문화를 즐기고 어른의 소리에 앞서 전자파의 소리에 폐색되어간다.
불혹을 넘긴 엄마들 가운데 그 누가 "선생님은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녀들 대부분은 가슴 저릿한 추억으로 스승에 대한 짝사랑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초했던 여중고교 소녀 시절, 우리는 오로지 '스승의 활자'만을 대하며 어른의 꿈을 키워가지 않았던가. 학생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외래문화에 노출되지 않은 세상, 곧 학교의 품 안에 안주했기 때문이리라. 너무 빨리 변하는 학창(學窓)의 문명은 슬프게도 소녀를 늙은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 2010년11월12일, 한겨레 신문 오피니언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