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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들리니?    
글쓴이 : 이성덕    16-01-24 09:58    조회 : 6,253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수많은 소리들과 만난다. 우리의 삶은 소리와 불가분의 연을 맺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주변의 소리는 살아 숨 쉬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잠시 동안의 고요함에도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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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호기심으로 주변의 소리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살짝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어느 아침의 소리는 이렇게 들려온다.
침실의 커튼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햇살이 핸드폰 알람소리에 맞춰 나의 눈꺼풀 위에서 춤춘다. 그 벨소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에 일부러 알람이 꺼질 때까지 감상하며 다가올 하루의 기대를 흥얼거린다.
그러나 며칠째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는 그 알람소리가 햇빛에 부딪치며 날카롭게 공명하며 그녀의 귓전을 울린다. 아내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해체하려는 특수요원처럼 종료버튼을 재빠르게 누른다.
 
또한 유럽여행에서 들었던 소리도 있다.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을 여행하는 동안 기념으로 손목시계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것은 고가는 아니지만 시계의 고장인 스위스에서 구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고풍스럽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것 같았다. 또한 가벼운 지갑으로도 아내에게 생색을 내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내 맘에 쏙 드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그 시계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에 조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진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내가 손목에 찼던 그 시계를 벗어 나에게 주며 말했다.
여보, 이 시계소리 너무 크지 않아요?”
혹시 공장이라도 났다면 어떻게 A/S를 받을까에 대한 걱정과 함께 시계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제야 나의 귀에도 초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거대한 비행기의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작은 손목시계의 초침소리에 묻히는 기이함을 경험하는 비행이었다.
 
그리고 자동차에서 들었던 소리도 있다.
나의 관점으로는 아내가 자동차 안에서 화장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물론 아내는 나의 그런 시각에 대해 강력하게 반박한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서 여유롭게 화장할 시간을 아이와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한다. 더욱이 흔들리는 차안이 아닌 고정되고 안정된 화장대에서 화장을 했다면 지금보다도 몇 갑절은 아름다워졌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검증이 필요 없는 아내의 주장에 대해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기로 한다.
아내는 부족한 시간의 효율적인 화장을 위해 자동차손잡이의 홈을 립스틱이나 파우더 케이스로 채워놓는다.
문제는 자동차 운행중에 그 케이스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다. 그것들이 부딪쳐 달그닥거리는 소음은 조용한 운전을 즐기는 나에게 크나 큰 고통을 준다.
이에 대해 아내는 작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사고난다며 운전에만 집중하라고 핀잔을 준다. 오늘도 아내는 잡소리가 가득한 차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얼굴에 마법을 건다.
 
다음은 집에서 듣는 소리다.
전원주책의 삶을 꿈꾸는 나의 현재의 집은 고층아파트의 16층에 있다. 위층의 전 이웃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우리가족과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우리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짧은 대화들이 반복 될수록 이웃으로 서로 정이 느껴졌다. 층간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곳임에도 이웃사촌인 우리의 위층에서는 간간히 화장실의 물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가족이 위층으로 이사왔다. 어리고 귀여운 남매를 키우는 젊은 부부였다. 우리가족은 그들이 이사 온 첫날부터 그 남매들의 달리기 경주에 아파트가 무너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해야 했다. 또한 그 쿵쾅거림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우리 가족의 평온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위층의 부부는 가끔 조우하는 때조차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우리는 밥을 먹다가도 천장에 그려지는 위층 남매들의 시끄러운 동선을 따라 눈을 흘겨야 했다. 책을 보다가도 또는 씻다가도 쿵쿵거리는 소리와 화장실의 물소리 그리고 웅얼웅얼 대는 이야기 소리가 곧 크게 들려올 것이라 예언하며 집중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위층 남매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었다. 그들에게 아래층에 사는 아저씨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그 남매의 나이를 물었다. 아홉 살 누나와 일곱 살 동생이었다. 나와의 대화 중에 동생의 목도리를 꼼꼼히 매어주는 누나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개구쟁이 같은 동생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날 이후로도 위층 남매의 밤늦은 경주는 계속되었다.
그 남매와의 짧은 만남이 있었던 나와는 달리 위층의 이웃들과 한번의 조우도 없었던 아내와 딸은 위층에 항의라도 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눈빛을 나에게 매일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미소를 띠며 아내와 딸에게 여유롭게 말한다.
듣고 싶은 것을 듣자구. 듣기 싫은 것을 일부러 찾아서 듣지 말구.”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반복되는 무엇에 집착하여 스스로 괴로움을 느낄 때에 꽂힌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무엇에 꽂힌 집착은 쉽게 벗어날 수 없어 매우 괴로웠던 경험도 있다. 층간소음이나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의 웃음소리 등이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듣고 싶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기다려 고대하는 수고를 다했다. 그 결과 듣기 싫은 소리를 결국 듣게 되었고 그 순간 미리 세워놓은 계획대로 짜증과 분노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나의 꽂힌 과거를 돌아보면 주변의 소리를 너무 가깝고 조급하게 귀로 들어서는 듣고 싶은 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대신에 그 소리들과 조금의 거리를 두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즐길 때에 들을 수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가족의 저녁시간, 우리 세 식구는 거실에서 위층을 향해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의 귀를 열었다.
위층의 두 남매가 즐겁고 사이좋게 뛰어 놀면서 쏟아내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셋도 따라 웃는다.
 

김혜정   16-02-24 23:29
    
이야기의 소재를 참 재미있게 풀어내셨네요.
그간 올려주신 다른 두 작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아주 신선한 글입니다.
글의 맥락이나 내용으로 볼 때 첫 단락은 없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아니,
글이 더 선명하고 깔끔할 것 같군요.
글의 마무리가 참 좋습니다.
제목은 '넌 들리니?' 보다는 '너는 들니니?'가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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