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이형연
이번에는 제대로 비가 한번 오려나 습한 바람이 목덜미를 끈적끈적하게 스쳐간다. 장마가 온다는 예보에 은근히 비를 기다렸건만 번번이 비구름은 남쪽 지방에만 머물다 물러가고는 했다. ‘7년 대한 가문 날에 하루도 비 안 오는 날 없다’더니 연일 비 온다는 예보와 간발 적으로 실없는 빗방울만 후드득거리고 만다. 이토록 비가 내리지 않으니 가뭄이 이어 지려나 은근히 염려된다.
이번에는 제대로 좀 비가 내려 더위도 식히고 메마르고 갈라진 땅도 적셔주며 켜켜이 쌓인 먼지들 말끔히 씻겨주면 좋겠다.
어떤 날씨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햇볕 반짝 나는 날은 그런 날대로 좋고, 눈 오는 날은 눈 오는 대로 또한 좋다. 그러나 그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왜 비오는 날을 좋아하느냐고 재차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망설여진다. 나는 왜 언제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린시설 날씨만 좋으면 농사일에 불려나가 논밭에서 힘들게 땀을 흘려야했지만, 비오는 날에는 집에서 쉴 수 있었기에 비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하굣길에 소나기를 만났는데 비를 피할 방법도 없고 해서 기왕에 적신 옷을 흠뻑 적시며 빗속을 추적추적 걸어왔더니 어머니는 빨래하는 사람 생각도 않고 옷을 적시고 온다고 꾸중이셨다. 그런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나는 그동안 빗속을 거닐며 한없이 그 빗줄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좀 더 성장해서는 비오는 날은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는 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여 힘들고 고단할 때 마다 비오는 날을 기다리고는 했었다.
직장을 따라 도시생활을 시작하고는 비오는 날이라고 해서 일을 쉬는 경우가 없었으나, 여전히 비오는 날을 만나면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는 듯 반갑기만 하다. 비오는 날이면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빗소리와 함께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하는 즐거움이 최고라고 노래했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좀처럼 그러한 기회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러한 여유를 즐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요즘도 모처럼 비오는 날이면 파전에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치고 만다. 그러한 즐거움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하면서도 나는 비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생물이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햇볕이며 없어서는 안 된다. 날마다 비오는 날이라면 노아의 시대처럼 살아남는 생명체가 없게 될 것이며, 나 또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햇볕도 나고 겨울이면 눈도 내리고 어떤 날은 바람도 불어주어야 우리가 살아가는데 적합한 환경이 될 것이다. 그 중에 비오는 날도 가끔 있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바람이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한 여름에 쏟아지는 한줄기 소나기는 청량제 같이 모든 생명체에 갈증을 풀어주며, 여러 날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는 마르고 굳어진 대지를 부드럽게 풀어준다. 풀잎에 내리는 빗줄기는 시들어가던 잎들에게 생기를 주며,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말끔히 씻어 본래의 초록으로 돌려준다. 예쁜 꽃송이 고운 때깔도 비를 맞아 더욱 선명해지며, 청아한 꽃의 자태를 뽐내게 한다.
이와 같이 고마운 단비를 기다리며, 나는 과연 얼마나 이 세상에 필요하고 반가운 존재인가 자성해본다. 가슴을 활짝 열고 비를 맞으면 나도 그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딱딱하게 굳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세상의 험한 인심에 멍든 가슴을 따뜻이 쓸어주며, 모두의 얼굴에 비 맞은 꽃송이 같은 웃음꽃이 함박 피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인생에 단비내리는 시절이 언제였는지는 모르나 비 내리는 날이면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어 가기를 원한다. 산천초목이 비를 맞고 싱그럽게 자라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