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조문(弔文)
정수인
어머니는 강물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발을 들인다.
“싫어, 강물이 무서워!”
“엄마랑 가는디 뭐가 무서?”
어머니는 비척비척 몇 걸음 더 들어간다. 물이 수나의 장딴지를 휘감았다. 어머니의 모시 치마 깃이 다리를 쓸고 흐른다.
“싫어! 강물루 들어가면 죽잖어! 난 안 갈텨!”
(중략) 어머니는 들은 척도 않는다. 자꾸 안으로 들어만 간다. (중략) 두렵다. 수나는 어머니의 목을 감아쥐고 울부짖는다. 목까지 물이 오른다.
“엄마! 등 고쳐 내라고 안 헐껴! 죽구 싶다고 한 헐껴!”
어머니는 말뚝처럼 선다. 등 너머로 오열한다. 목에 선 핏대가 팔뚝에 느껴진다.
“어이구, 울 애기! 이 에미가 잘못했다. 에미가 미친년여!”
올 3월이었다. 안학수 시인이 어린 시절의 삶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의 한 장면이 떠올랐던 때는. 위에 인용한 단락은 척추에 장애를 가진, 흔히 꼽추라고 불리는 저자가 어린 시절에, 그의 어머니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데다 병약한 아들을 안고 차가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를 꼬옥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깊어지는 물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에게 그는 죽지 않겠다고, 살고 싶다고 악다구니를 썼다고 한다.
올해 3월은 보통의 3월이 아니었다. 그달 10일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 선고가 내려졌지 않은가? 며칠을 붕 뜬 기분으로 온갖 기사를 읽으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에 대한 기사들 속에서 나는 한 참혹한 기사 한 편을 읽게 되었다. 바로 그 기사가 안학수 시인이 서술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대구 일가족 변사 사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 한 줄의 사건명 아래 담담히 서술된 사건의 전말이 가슴을 매이게 했다.
기사에 드러난 대로 사건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먼저 낙동강변에서 50대 여성의 시신 한구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신분증과 휴대폰이 있어서 신원이 밝혀졌지만 가족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다음날 경찰은 그의 집으로 찾아 갔다. 놀랍게도 그 집 베란다 벽장에서 또 하나의 시신이 발견된다. 50대 여성의 딸로 추정되는 20대 여성의 시신은 이미 백골 상태다. 그리고 식탁 위에서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다. 백골로 발견된 20대 여성이 쓴 것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유서.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 책을 종이 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5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8일 후, 낙동강 하류에서 열한 살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먼저 발견된 50대 여성의 아들이자 아파트 베란다에서 백골로 20대 여성의 동생이었다. 유서는 바로 그 열한 살 아이의 것이었다. 2016년 9월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십자수와 색종이 접기 책은 아마도 열한 살 아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이었을 것이다. 십자수라니, 색종이 접기라니… 그런 세심한 놀이를 좋아했던 아이가 쓴 ‘유서’라는 두 글자. 그리고 그보다 더 서늘한, ‘내가 죽거든’이라는 다섯 글자. 쓸모없는 상상이지만 아이의 글씨가 반듯했을 것만 같았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기사에 남겨진 대로라도, 그렇게라도 아이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거의가 여백일 아이의 생애를 정리하여 짧은 조문을 보낸다.
사건이 일어난 해인 2016년에 너는 보통의 아이라면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고 있었어야 했겠구나. 열한 살 나이, 되짚어보면 너는 2006년 즈음 태어났어. 그해에는… 그해에도 이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겠지만, 네 엄마에게는 네가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일이었을 거야. 네가 죽기 8년 전 네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다고 해. 당시에는 세 살 아기여서 잘 몰랐겠지만,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되었을 것 같다. 너는 죽 엄마와 함께 살았더구나.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어야 할 2013년, 그날 입학식에서 네 엄마는 학교 선생님에게 집에서 너를 가르치겠다고 했단다. 학교 선생님들이 거듭 설득했지만 네 엄마는 너를 학교에 보내주시지 않았다고 해. 왜 그랬을까? 네가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아 했을 수도 있고, 네 엄마가 너를 학교에 보낼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을 수도 있겠지. 혹은 당시의 형편이 너를 학교에 제대로 보낼 수 있는 정도가 못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은, 단순히 그곳에 물리적으로 데려다놓는 것만은 아니니까. 학교에 입혀 보낼 옷가지와 신발, 가방도 필요했을 것이고, 필기구나 학습 진도에 맞춘 갖가지 준비물을 준비하는 데도 비용이 드니까. 너는 이 세상에 없고, 네 누나와 엄마마저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가 없으니, 이제 그 이유는 영영 알 수가 없겠다.
너는 그때,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슬펐을까? 무서웠을까? 아니면, 그다지 아쉬운 것이 없었을까? 아니다, 너는 네게 소중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남기는 마음을 가진 아이니까,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것만 같아. 많이 서운했겠지만, 또 그런 마음을 엄마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만 같아.
2016년 1월에 학교 측에서는 너를 학교에 보내라고 계속 연락을 했다고 해. 와중에 아동학대가 의심되어 당국에서 조사를 나갔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고 하는구나. 기사의 이 대목에서 나는 숨을 길게 내쉬어야 했단다. 그것이 안도였는지, 상황에 대한 더 깊은 의심이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기억할 수가 없어. 학교 측의 끈질긴 설득 끝에, 너는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고 9월 2일에 등교했지만 7일 이후로 학교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어. 영원히. 너는 9월 15일 오후 6시 35분경 강변의 한 CCTV에 마지막 모습을 남겼더구나. 엄마와 함께였던 너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고, 그랬다고 한다.
열한 살이면, 이제 손끝도 제법 야무졌을 텐데, 네가 만든 십자수는 어떤 그림이었는지, 무엇을 종이로 접었을지 궁금하구나. 나는 네게 처음 십자수와 종이접기를 가르쳐준 이가 아마도 네 엄마였으리라 짐작해. 아니, 그러길 바라. 네 엄마가, 그저 그렇게 죽음 뒤에 받은 이목에서처럼 나약하고 나약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길 바라는 마음이라서.
감히 내가 고인들의 죽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 마음을 졸이면서도 짧은 조문을 보낸다. 이 가족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떠올렸던 안학수 시인이 서 있던 생사의 갈림길, 그 갈림길에 이 열한 살 아이도 서 있었을 것이다. 안학수 시인은 살고자 했고, 몸부림쳤고, 그렇게 살아나서도 죽음에 가까운 시련을 겪었지만 살았다. 그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살았다.
어머니와 딸과 아들, 세 사람은 죽었다. 그들은 죽고자 했고, 죽었고, 역시 삶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 물론, 그들이 실제 죽음을 택한 것인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볼 수 없었으므로, 단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그들 자신의 것만은 아님은 분명하다. 한 가정이 죽음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 비록 살아서의 그들을 몰랐던 우리지만 지금에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근엄한 추모는 기억이 아닐까? 죽음의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아닐까?
“하늘까지 75센티미터”라는 제목은 척추 장애인과 다른 보통의 건강한 사람의 신장 차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희망과의 거리로도 표현되는데, 키가 작은 주인공이 하늘로부터 그만큼 더 먼 곳에 서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저마다의 처지에서 하늘의 높이는 다 다른, 너무나 다른 세상인가 보다. 저 먼 하늘에 너무 일찍 닿아버린 열한 살 아이를 기억하고자 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