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초등학생 버스 요금이 5원인데 내 주머니엔 여전히 4원 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한테 딱 1원이 모자란다는 사정 이야기를 해서 버스를 타는 건 당시의 내 주변머리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고는 아무래도 힘이 부쳐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눈앞에 엿장수가 있었다. 얼른 주머니에 있는 4원을 다 털어서 엿을 사먹었다. 걷기를 멈추고 걸터앉아서 달달한 엿을 먹으니 다리 아픈 것도 덜하고 기분도 다시금 좋아졌다.
엿을 다 먹어 치운 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걷기를 시작했다. 신일고등학교 앞을 지나고 수유리를 지나고 우이초등학교를 지나쳐서 마침내 가오리의 우리 집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세 시간은 넘게 걸어왔지 싶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서 으스름 저녁이 되어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식구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집에 전화도 없던 터라 늦게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하지도 못했으니 내 걱정을 좀 했지 싶었다. 자초지종을 간단히 얘기하자 식구들은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1원이 없어 그 먼 길을 걸어왔다는 내 이야기가 어이없다고, 버스기사에게든 친척집에 가서든 사정을 얘기하지 않고 무턱대고 걸어온 나를 정말 이상하다고들 했다. 먼 길을 용케 잘 걸어왔다든지, 고생했다든지 하는 격려나 위로의 말들은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주길 기대한 것도 아니어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날 이후로 식구들은 나를 좀 특이하고 별난 아이로 생각하는데 좀 더 확신을 가지는 듯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별로 추억거리가 없는 내게 그 날의 선택인 ‘ 집으로 버스 대신 내 발로 걸어가기’ 는 소중한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손쉬운 방법보다 기본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한 나의 방식을 지금은 미련함 대신 자신감으로 재해석한다. 버스 타며 지나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소소한 풍경들이 집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면서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과 사람들, 간판들, 글귀들, 피곤함과 허기를 채워줬던 엿의 달달한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