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되자마자 1교시 전에 자습시간이 있고, 6교시, 7교시가 다 끝나도 야간 보충이 또 있었다. 그러니 아침 일찍 나와 저녁늦게 들어가는 강행군은 정말 지옥이었다. 그래도 난 꼭 대학가자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 이지 싶다. 어찌나 피곤하고 짜증만 나던지 ‘안 되면 조상 탓’ 이라고 뭐든 ‘탓’만 해댔다 . 집에 가도 공부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않으니 공부를 못할 수 밖에 없는 거고, 늙은 엄마는 정보력도 없고, 과외도 못하지만 할 돈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는 등 탓만 하니 찾아오는 건 좌절감 뿐이었다.
이 와중에 최 순열 선생님은 내 정신적 지주셨다. 국어선생님 이셨는데 말씀도 진짜 재미있게 하시고, 공부도 잘 가르쳐 주시니 수업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정다감하게 학생들을 다 대해 주시니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거의 다 선생님을 좋아해 선생님의 인기는 대단했다.
“요즈음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익숙한 목소리에 뒤 돌아보니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이내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앞질러 가셨다. 나는 순간 두렵고 떨리기도 했지만 좋기도 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종종 걸음으로 뒤따라 간 곳이 학생부실 이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으셨고, 난 성심성의껏 말씀드리다 결국 나의 어두운 얼굴 표정 부분에서..,
“그냥 모든 게 싫어졌어요. 집에 들어가도 그냥 어수선하게만 느껴져 공부도 안 되고, 그래도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나름 하는데도 제 성적은 맨날 그대로 이니 가슴이 답답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목도 매어 말은 못하겠는데 한 편으로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선생님 앞에서 이게 뭔 꼴인가 싶고, 게다가 선생님이 늘 환경 탓, 부모 탓 하지 말라며 그래봤자 자신의 합리화 아니겠냐고 하시며 공부에 전혀 도움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난 이미 떨꺼덕 합리화 잘 하고 있다고 말한 꼴이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선생님은 잠시 계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 난 조실부모한 사람이야. 누님이 버스차장을 하여 날 가르치셨지. 그런데 누님이 사고를 당해 발의 반쪽을 잃으셨어. 그러나 누님은 굴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해서 내 학비를 다 대주셨어. 그런데도 난 그런 누님께 짜증을 냈어. 그럼에도 누님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으셨고 동생을 바라 볼 땐 항상 웃으셨지. 난 지금도 내 누님이 대단하신 분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가장 후회가 되는데. 너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선생님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내 활짝 미소 지으시며
“ 다 사치야 사치…….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해‘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저랬으면 더 잘 했을 텐데’ 그러면 너만 더 힘들어만 지지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어”
“네. 선생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내 마음 저쪽에부터 회오리바람이 몰아 부치더니 내 머리 끝으로 터져나가는 듯했다. 맞다 사치였다. 나의 부모님 역시 지금껏 쉬지 않고 일하시면서 호강 한 번 못하셨고, 자식들 고생 시켜 미안하다고 매일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는 선생님과의 독대가 끝나고 며칠을 꽁꽁 앓다가 다시는 그 누구의 탓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남의 것만 같았던 포근한 행복이 조금씩 내게로 다가왔다.
결혼 후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해 연락이 끊어졌지만 지금도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면 재일 먼저 선생님이 떠오른다. 정말 하기 힘드셨을 말씀을 제자를 위해 선뜻 내 주셨던 선생님, 한 해가 또 가고 있는 고비에 들어 더 그럴까? 부쩍 더 선생님을 뵙고 싶다. 지금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건강은 하실까?
“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음 다 같이 사는 거야. 건강하기만 하면 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찾아뵈었던 길 위에서 또 뵙기를 원하며 인사드렸을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찬바람이 불어서 더 그런가, 마지막 인사가 되고만 선생님의 말씀이 유난히 귓전에 윙윙 맴도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