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박해풍
오늘밤 외로운 마음에 주막(카톡) 앞에서 서성인다. 많은 얼굴들이 주막에 모여 있다. 환한 미소로 혹은 증명사진으로, 어떤 이는 멋진 풍경과 수수께끼 같은 문양과 그림으로 '나'를 표현한다.
단톡방(단체), 다락방(동창), 안방(가족), 사랑방(성당), 독방(친구). 방들은 경계를 이루고 부뚜막 아궁이처럼 줄지어 서 있다. 가끔은 방 뺀 자리에 새로 이사 온 이도 있다. 방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가끔은 친구로 위장해서 주막에 잔뜩 쓰레기만 남기고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환기를 시키고 다시는 오지 못하게 자물쇠로 채웠건만, 주인장 비웃듯이 오물만 잔뜩 토해내고 또 줄행랑이다.
일 년 내내 행방불명인 친구, 기억조차 희미한 이,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빈 방, 소리 없이 야반도주한 이들.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이 기다란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밤새 태산을 홀로 넘을 생각을 하니 텅 빈 마음에 밤길이 두렵다.
작년 일월에 아내와 같이 하던 장사를 접었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갇혀있던 새장을 탈출해 두 날개를 퍼덕이며 훨훨 세상을 날아 다녔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우선, 한동안 미루어 왔던 주변의 일부터 정리했다. 다음은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여, 실천 가능한 일부터 폼나게 옮겨보기로 했다. 바다와 산, 계곡, 자연을 품에 안고 유유자적 한량이 되었다.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동해와 남해의 푸른 바다를 찾아 돌아다녔다. TV에서 군침만 흘리며 입맛을 다시던 맛집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뜯고, 맛보고, 즐기기를 이어갔다.
몇 달을 송아지 고삐 풀린 듯 이리저리 사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한동안 꿈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뜨겁던 바닷모래가 서서히 식고, 나뭇잎이 조금씩 물들어 갈 때쯤, 숨을 돌리고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한동안 나의 여유로운 시간과는 달리, 함께할 동지들은 민생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바쁜 세상사에 눈썹을 휘날리며 삶의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함께 놀아줄 아내마저도 딸들 뒷바라지에 하루해가 짧았다. 그동안 맞벌이로 비워져있던 엄마의 손길을 아이들은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가장으로서 자책감과 미안함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쓸쓸한 저녁달을 머리에 이고 다시 주막을 기웃거린다. 사랑방(성당 모임)을 지나치다 살짝 들여다봤다. 주님의 말씀처럼 살라고 한다. 기도로 이 마음이 치유가 된다면······. 그러기엔 신앙심이 접시물이다. 허전한 마음은 엄동설한에 문풍지 찢기듯 너덜댔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들. 군중 속에만 고독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막에도 고독은 존재했고 섬은 존재했다.
혼자 노는 것도 점점 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건 혼자 있을 때 외로움과 고독이 거친 풍랑처럼 찾아오는 것이었다. 창공을 날던 나의 두 날개는 서서히 무뎌지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춤 까지 추려니 재미도 없다. 관중도 없다. 허전한 마음을 중년의 외로움으로 치부하기엔 왠지 서러웠다.
이겨내자! 이 엄한 시간을 보람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 가자고 생각을 하던 중, 안산문협에서 주최하는 “전국 별망성 백일장”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발 더 나아가 협회에서 개설한 문학 강좌에도 등록했다. 4개월의 글쓰기 기초과정은 힘들고 어려웠다. 12월에 종강을 하고 수료증을 받으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가끔씩 시나 수필을 쓰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부였다. 또한 김창진 교수님과 수강생분들과 교감하며 공부를 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 문장이 이어져 한 문단을 이루고 마지막에 가서는 멋진 수필이 완성되듯이 여생을 멋있게 완성해 가보자. 문학은 나의 벗이자 힘이다. 글쓰기로 제2의 인생을 펼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