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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상일지    
글쓴이 : 박경임    19-08-24 13:42    조회 : 49,186
  현관에 서서 집 안쪽을 둘러보았다.

가끔 병원 신세를 지는데, 입원을 하게 될 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집에 들어왔을 때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아 구석구석 다시

점검을 하게 된다. 밀린 빨래를 빨아 말리고, 냉장고 속 음식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다시 한번 돌리고,

과일 몇 개는 입원 보따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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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복을 갈아입자마자 혈압과 체온을 재고, 내용물이 뭔지도 설명하지 않고 수액을 찔러 넣는 형식적

의식이 진행되었다. 그 수액이 내 환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은 나는

그 링거 줄이 오히려 안정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일 할당량의 수액을 얼른 맞고 저녁에 팔이 자유롭기 위해 수액의 속도를 살짝 높이기도 하곤 했다

입원실은 3개의 침대와, 원도어 냉장고 하나, 벽에 매달인 TV, 화장실이 달린, 나름 고급 병실이었다. 의료보험 수가에 별도로 7만 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지만 입원 기간이 길지 않아 3인실로 하기로 했다. 내심 실비보험이나 다른 보험에서 보전 받을 계산을 하고 스스로 유배를 택한 나에게 6인실의 복잡함보다 조금의 평화를 주고 싶었다.

나는 건물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쪽 침대를 택했다. 다행히 모두 퇴원한 시간에 제일 먼저 자리를 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름 날의 뜨거운 햇살이지만 냉방이 잘 된 병실에서 바라보니 하늘 빛깔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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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은 척추의 염좌 및 긴장, 약간의 협착.

지난겨울에 얼음판에 미끄러져 6개월이나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번갈아 다니며 치료했지만 별 차도가 없이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다니던 정형외과 의사가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인이 이 방면에 솜씨가 좋다는 의사를 소개해 주어 검사를 하고 바로 시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입원하게 된 것이다. MRI를 찍으러 통 속에 들어가는 순간 지난번 메니에르로 쓰러져서 뇌 MRI를 찍었을 때가 생각났다.

다시는 이 통 속에 들어오는 일이 없기 바랐는데 또 굉음과 함께 내 뼈 마디마디가 잘려서 스캔 되고 있었다.

기계음의 요란한 굉음 속에서 이상하게 세상과 단절된 고요가 느껴졌다. 가족, 친구, 애인,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까만 어둠 속에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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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고통은 본인 몫이다. 요양병원에 오랜 시간 누워있는 엄마를 보러 갈 때도 나는 그저 지나는 말로 어떠냐고

하는 위안과 약간의 간식을 드리고 시간을 때울 뿐, 엄마의 고통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고,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오래 누워있어 모든 근육이 사라져 가고 있어 한 쪽 다리가 휘어져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게 서서히 엄마의 뼈가 휘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병원 침대 끝자리에 걸터 앉아 얼굴이나 들여다보다가 되돌아 오곤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입원하면서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침대 모서리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싫었다.

또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일 아들 내외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위가 익숙하지도 않은데 처가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도 탐탁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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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은 부분마취를 하고 40여 분의 짧은 시간에 끝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었다.

<고주파 열 응고술>이라는 방법으로 시술하였는데 기계를 통해 발생하는 열과 자기장으로 감각신경만을 선택해

응고시키는 시술방법이라 했다. 예전 같으면 째고 수술해야 할 사안이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짧은 시간에 아픈 신경만을 선택해 치료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3명의 의사가 2명은 모니터를 보고 한 사람은 대형 주사기를 들고 내 등뼈 속에 밀어 넣어 이리저리 작업을 했다. '조금 더' '오 케이'를 반복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 같았다. 엎드린 뒤통수에 울리는 그 소리들은 차가운 냉방을 한 수술실에서 더욱 나를 소름 돋게 해서 차라리 전신 마취가 좋을 듯했다. 수술실까지 침대로 이동해야 할 만큼 안 좋았는데 시술 후 3시간 정도 바르게 누워있다가 일어서니 거짓말처럼 허리도 다리도 멀쩡해졌다. 조금 전까지 발가락까지 꼬여서 걷기 힘들던 내가 거짓말 같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왜 병원에 있는지 그야말로 나이롱 환자가 되었다.어떻든 주말을 이용해 4일간의 휴가를 얻은 셈이다. 일도 가족도 다 잊은 채 지나기로 했다. 주사 꽂은 손은 내려놓으라는 간호사의 핀잔을 들으며 장편소설 한 권도 읽고, 태블릿에 떠도는 유튜브에서 세상구경도 했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사실 혼자인 시간이 대부분인데 병원에 누워 혼자가 되니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 혼자로 살아내야 하는 순간들을 위해 강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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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 침대에는 아이돌 가수의 메니저라는 젊은 여자가 입원했는데 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해 백혈구 수치가 많이 올라가고 열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며 3일 내내 잠만 잤다. 그녀 또한 나 처럼 병 문안 오는 이가 없었다. 내 뒤를 따라 입원한 내 또래의 또 한 여자는 남편과 아들을 대동하고 떠들석 하게 병실에 들어서며 나를 향해 어디가 아프시냐하더니 ,허리병은 나이 들어가는 것의 필수 과정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많이 쓰인 관절들의 반란을 통증으로 읽으며 살살 달래주어야 할 것 같았다. 위중한 병이 아니면 4,5일 정도의 입원은 여행과는 또 다른 나를 돌아보기에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더 많이 위중한 환자들을 보며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깨운 휴식의 시간이었다.


노정애   19-08-27 10:28
    
박경임님 반갑습니다.
먼저 저희 한국산문 홈피에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꼼꼼하고 찬찬히 잘 쓰신 글입니다.
박경임님의 병원행을 함께 한 것 같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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