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써왔던 수필들을 한 편씩 업로드 해볼까 합니다. 평가를 듣고 싶기도 하고, 더 많은 분들께 제 글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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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인연의 미묘한 관계가 참으로 묘하다. 과거 연인이란 이름에서 뛰쳐나간 여인이 그리워, 같이 걷던 길과 같이 쌓았던 추억을 홀로 되짚어 몇 날 며칠을 헤맸던 적이 있었다. 마주쳤다면 그녀에게는 우연으로, 나에겐 우연을 앞세운 인위였을 기억이다. 하지만, 그토록 생각지도 못하게 벌어지던 우연들은 죽어라 매달려 만들려 하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 결국 그녀를 단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다.
인연이라면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고, 어떤 시간에서든 다시 맺어진다던 할머니의 말씀이 진실이라면, 나와 그녀는 확실히 인연이라 말할 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말이 연인에게만 국한된 단어는 아니라는 듯,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우연을 통해 다시 한번 되짚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일했던 작은 회사에서 나의 바로 위 상급자로 계셨던 분이었다. 한데, 그렇다 해도 나의 아버지와 거의 비슷한 연배셨기에, 거의 아버지처럼 대하며 따랐다. 일을 하는 내내 어떠한 쓴소리도 하지 않으셨던 분이었고, 비슷한 연배인 분들을 몇 번 겪었던 나에게 박혀있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걷어내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셨던 분이었다. 솔선수범과 정직함으로 쉽게 볼 수 없는 바름을 표출하시던 분. 그래서 나 또한 그분께 누 가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의 수고라도 덜어드리고자, 더 열심히 일에 임하고 늘 밝게 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얼마에 시간이 지나 일을 정리하게 되어 더 이상 그분을 뵐 수는 없게 되었고, 가끔씩 연락하는 것으로 안부를 대신했다. 그리고 최근, 화창한 오후에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 그분을 마주쳤다. 그분은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커피를 내미셨다. 나는 그 순간, 우연과 인연은 끈끈한 인과로 얽혀 함께 항해하는 배라는 것을 느꼈다.
인연은 우연을 등에 지고 나타난다. 둘 중 하나만을 믿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인연이든 우연이든, 사람과 사람을 끝까지 묶지 못하고 중간에 힘없이 끈이 풀려버린다. 그러나 무엇이 우선이든 간에 둘이 함께 나타난다면, 이는 필연이 된다. 유구한 역사의 반을 감정과 정서로 꾸몄던 인류에게, 인연과 우연은 신앙과 꿈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믿고 따르게 된 가치인 만큼, 그 두 개가 만들어낸 필연이 실제로 힘이 없다 해도, 플라시보 효과처럼 우리가 그것에 힘을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린 우연과 인연이란 단어에 흔들리고, 두 개가 만들어낸 연을 맹신한다.
우연과 인연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필연을 통해, 나는 진실로 또 한 사람을 이 삶에서 얻을 수 있었다. 천연에 맡겨야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필연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