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놓고 오면 느끼는 장애
2020. 3. 28 (목) 김오심
핸드폰을 놓고 왔다. 딸에게, 신랑에게, 아빠에게, 내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세 개 뿐이다. 이 기계 가끔은 없애고 싶을 때도 있다. 편리를 가장한 일상의 노예다. 뇌의 일부 같은 기계가 없으면 안절부절 어떤 일이 잘 안되기까지 한다. 큰 일 났다. 이 기계가 없으니 이렇게 불안한데서야. 기계의 힘이 은연중에 우리 뇌의 일부를 차지해 버렸다. 늘 그곳에 저장하고 생각 없이 불러와 이용하고 닫고 하다 보니 이 기계가 없으면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전화번호를 세 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상에서 그것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을 뿐 더러 손안에 들어 있는 작은 기계에 뭔가를 입력하면 너무도 신속하게 답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에 대한 저장 기계를 항상 휴대하게 되었다. 별도로 휴대하는 기계에 대한 불편함이 높아지면 영화에서처럼, 인체에 사람 사이를 구별하기 위한 식별키와 내 기억의 일부를 차지할 메모리칩이 동시에 삽입하고 살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때까지 내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삽입 된 칩에 대해 버튼 하나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조정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있고, 기계의 발달은 편리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인간이 더욱 외로워지는 것은 아닌가. 풍요로운 가운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당황스럽던 한 때처럼, 이것 또한 얼마나 아픈 일인가! 우리는 이런 시대를 대비한 인간 자존감 회복과 사회 구성원간의 인간성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우리는 현재를 가장 행복하게 보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자. 오늘 행복하게 보내지 않으면 내가 행복해야할 시간은 없는 듯하다.
눈을 떠 활동하는 시간에 경의를 표하며 언제나 열정을 다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면서 동시에 나도 행복한 삶 말이다.
코로나 19에 대해 겸허하게 우리를 되돌아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우리들의 자구 노력이 필요한 때, 우리를 가장 편리해 하는 부분에서 그것이 재앙이 되는 사회를 경계하고, 좋은 사회로 가기 위해 서로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