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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다리 서로 기대며    
글쓴이 : 황선금    24-07-08 20:20    조회 : 1,878
   아픈다리 서로 기대며.hwp (188.5K) [0] DATE : 2024-07-08 20:20:27

아픈다리 서로 기대며

황선금

 

 오랜 지기들 삽십여 명이 모여 선운사로 가을 단풍을 구경하러 갔다. 열아홉, 스무 살 무렵 공장에서 만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세상을 배우며 정을 나누며, 자존감을 키워온 사람들의 모임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가면서 각자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쳤지만 만사 다 제치고 선운사행 관광버스를 탔다는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서 41년 전 퇴직한 직장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런 모임이 가능하냐며 놀라워한다. 눈물겹게 반갑고 좋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샘 솟아 차오르는 듯 설렌다 

 우리는 1970~80년대 공장(원풍모방)에서 노동자로 만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쫓겨났다. 입사 시기는 1967년부터 80년도까지 다 다르고, 나이도 한 갑을 갓 지난 60대 초반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고향도 다르지만, 현재 생활 터전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한 가지 같은 것이 있다면 퇴사 일시이다. 1982927일 가을 대낮에 야수 떼 같은 국가폭력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노조 사무실을 강탈했다. 조합원들은 불법 폭력에 대항하여 45일간 단식으로 저항하다가 그해 추석날 새벽에 끌려나가 해고되었다.

 되돌아보면 험난한 그 시절을 잘도 살아냈다 싶다. 19805.18 광주민중 항생 당시 노조에서는 계엄군의 총칼에 맞아 부상당하고 감옥 간 광주시민 돕기 모금을 결의하였다. 시대적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일이 그나마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참담한 심정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조합원 1,700여 명 대다수가 참여하여 마련한 성금은 노조 간부에 의하여 광주가톨릭 주교에게 전달되었다. 그 사건으로 노조 대표와 집행부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자가 되어 노조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였다. 거센 회오리바람 앞에서 2년간 꿋꿋하게 버티던 노조는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가지가 갈기갈기 찢기며 푸르던 잎새들 20대의 560여 명은 우수수 떨어져 사방 천지로 흩어져야만 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그 야만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고자들의 본적,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하여 전국 공장마다 뿌려서 재취업을 차단했다.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육체노동자에게 블랙리스트는 또 다른 살인 행위였다. 월급봉투째 어머니께 가져다드려도 도시 빈민의 삶은 늘 그 자리를 맴도는데 말이다.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동료들은 결혼이라는 피신처를 찾아서 숨었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권력은 시집까지 찾아다니며 불순하다느니 빨갱이 짓을 했다느니 들쑤셨고, 시댁 사람들의 눈밖에 나 가정불화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번 덴 가슴들은 자신의 과거가 남편이나 자식에게 혹여 올가미가 될까 전전긍긍하면서 가슴 밑바닥에 꾹꾹 눌러놓고 드러날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암울한 시절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밝아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믿고 언제 일지 모를 그날을 기다렸다. 그토록 참고 기다렸던 새벽은 ‘6.10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밝아왔다. 2000년도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법에 의해 노조 단체의 명예회복과 156명의 신청자 개인도 함께 민주노동운동으로 인정받아 명예 회복이 되었다. 동료들은 명예 회복 인증서를 받아 가슴에 안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 했다. 서울 간 딸이 빨갱이가 되었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형사들에게 시달렸던 친정 부모에게 인증서를 바치는 동료, 남편과 자식에게 증서를 내보이며 과거를 털어놓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는 사람, 빨갱이 며느리라며 부당한 시집살이를 잘 참아낸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끌어안고 울었다는 남편, 엄마 덕분에 민주주의 세상에 살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자녀들 등등 사연도 많았다. 인증서 종이 한 장이 가족과 이웃 사람들과 오해를 풀고 자녀에게 존경받는 삶의 전환을 가져왔다.

해고자 모임에서는, 2019년 가을 9.27 사건 37주년에 126인 참여한 풀은 밝혀도 다시 일어선다증언록을 책으로 엮었다. 개인사와 집단 구술을 병행했던 인터뷰 장소는 눈물바다였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연들을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산업화 사회에 누이로 승자독식 시대의 어머니로 아내로 짊어져야 했던 등짐과 상처들을 토해내며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맞대고 울고 웃으며 서로를 쓰다듬는 위로의 장이었다.

그 이후 한결 자신을 짓눌렸던 억압된 감정으로부터 벗어난 동료들은 민주 노동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며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순위 11위라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70년대 나라가 부강해야 노동자가 잘살 수 있다는 정치 구호를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산업화 초기 공장 노동자였던 해고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삶이 달라진 것이 없다. 순대국밥집, 감자탕집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양보호사, 가사도우미, 상점 판매원, 청소부, 식당 설거지 등등 최저임금 비정규직 일용 노동자들이다. 뚜렷한 기술도 탁월한 지식도 없으니, 재난과 같이 달려드는 노후 준비에 마음이 바빠지고 늘어나는 나이테만큼 아픈 곳만 많아지니 모두가 쉬운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광장으로 나가고 정의를 보면 손뼉 치며 응원을 보낸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지 않고 마음이 통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고창 선운사의 가을빛은 울긋불긋 어여쁘다. 도솔천 잔잔한 물속에는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 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환한 모습도 담겨 잔잔하게 일렁인다. 이제 곧 나무들은 애면글면 잎을 떨구고 나목으로 겨울 비바람을 맞으며 내년 봄을 준비할 것이다. 이 가을이 예순 대의 마지막 가을이고 내년이면 일흔 고갯마루에 선다.

선운사 해설사가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그러할진대 이들과의 인연은 참으로 귀하다. 황혼길을 노여워하지 않고 지금처럼 아픈 다리 서로 기대어 쉬어가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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