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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가 있는 빵    
글쓴이 : 김연    24-07-22 18:53    조회 : 4,171

                                         스토리가 있는 빵

                                                                                                                                                       일산반  김연

집에서 뒹굴뒹굴 놀던 남편은 노는 일에 이력이 났는지 지게차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제과 제빵을 배우러 학원에 다닌다. 공무원들은 퇴직을 일 년 혹은 6개월 앞두고 공로 연수에 들어가 나중 직업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며 퇴직 이후를 준비한다. 반 년 이상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이 보기 싫어 제빵이라도 배워 보라고 등 떠밀어 학원에 보냈다.

남편은 학원에 간 첫날부터 따끈따끈한 빵을 들고 집에 왔다. 우유식빵, 버터식빵, 밤식빵, 시나몬식빵 등과 소보루, 단팥빵, 크림빵, 야채빵, 도넛 등을 남편은 직접 만들어 가지고 왔다. 갓 구운 빵이라서 그런지 제법 입맛을 돋군다. 식구가 단출한 우리 집에서 당일에 소비하기엔 많은 양이였다. 처음에는 먹을 만큼 먹고 냉동실에 넣어 보관했지만 이왕이면 지인들과 나눠먹으면 좋겠다 싶어 여기저기 빵을 들고 다녔다.

나는 주로 낮 시간에는 서예 학원을 간다. 집중력 향상과 바른 자세를 갖게 하고 자기 정화와 수양에 도움을 주는 서예는 마음이 조급하면 하기 힘들어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나는 남편이 만들어 온 빵을 들고 서실에 가져가서 반원들과 나눠 먹었다. 한참 글씨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불쑥 허기가 찾아 올 때가 있다. 그래서 오후 서너 시쯤 되면 간식꺼리로 떡, 빵 등을 먹는다. 남편이 만들어 온 빵을 처음 들고 가면서 좀 꺼려지기도 했다. ‘이거 한 번 들고 가면 계속 가져가야 되는데!’ 하는 생각과 요즘처럼 간식이 흔한 시대에 완제품도 아닌 실습용 빵을 가족도 아닌 타인들에게 주었다가 괜한 구설에나 오르지 않을까 망설여졌다.

어느 날 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이 빵을 만들어서 집에 왔을 시간에 나는 선생님께 빵 수급을 해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날은 하필 속에 든 게 없는 단과자빵이었다. 나는 빵칼과 잼 등을 챙겨 부리나케 서실로 향했다.

빵을 들고 서실에 들어가 빵에 잼을 발라 먹기 좋게 비닐에 하나씩 담아 나눠 주었다. 그런데 간식을 즐겨 들지 않는 한 남자분이 김 연씨는 빵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당은 괜찮습니까?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비꼬듯 말을 던졌다.

이에, 원장님은 이 빵 먹어 치워야 해요! 모르시는구나? 남편 분이 요즘 제빵 배우시잖아요! 나는 빈정이 확 상했다. 욱하는 감정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뭐래!)

나는 발끈하는 심정이 되어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앞으로 지는 빵 안 갖고 올랍니다!

오늘이 마지막 빵인께 맛있게들 드이소! 하며 나는 그분의 억양과 말투를 흉내내 되갚아 주었다. 내가 울컥하자, 신입 여성 두 분이 어, 왜요? 한다. 기껏 집에 뛰어가 빵 갖고 왔드만, 빵 좋아하는 갑다! 이 빵 먹어 치워야 한다! 이런 말 들어가면서까지 제가 가져오게 생겼습니까? 이제 빵 안 갖고 올랍니다! 했더니 그제서야 그 남자분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듯 면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빵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빵이 참 맛있다며 그분을 포함해서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칭찬들을 과하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늦었습니다! 하고 뼈있는 농담을 해서 겨우 어색한 분위기가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날 집으로 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의 주책맞은 이 오지랖에 대해서....왜 이러고 사나? 쓸데없이....

아집 강했던 예전이었다면 그런 말 듣고는 다신 빵 들고 다니지 않았겠지만 나이 탓인지 성격이 달라진 나는 그 이후에도 빵을 들고 서예 학원에 갔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그날 따라 원장님 말씀에 내 기분이 더 상했었지만 서실 선생님은 내게 김장도 담아 주시고, 새우젓, 들기름 등 먹을 것이 생기면 각별히 챙겨 주곤 하셨던 분이다.

이제 서실에서는 은근히 나를 기다리는 분도 있다고 한다. 김 연씨 언제 오세요, 출출한데, 오늘은 빵 안 갖고 오시나 한다는 얘기도 서실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막연한 의무감에 때론 나눠 먹고 싶어 빵을 챙겨 갔다.

오늘도 나는 친구들이랑 나눠먹기 위해 가방에 주섬주섬 빵을 챙겨 나선다. 이 빵으로 말하면 제과점에서 파는 흔한 빵이 아니고 내 남편 노**씨가 33년 공직 생활 후에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만든 스토리가 있는 빵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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