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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 길을 함께 걸었지    
글쓴이 : 진연후    19-07-29 23:28    조회 : 18,409

우리, 그 길을 함께 걸었지

                                                                                           진연후

걷는다. 길이 보인다. 그 길로 걸어가는 것뿐이다. 지나온 길엔 초여름 나뭇잎만큼 많은 이야기가 머물러

있고 우리는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간혹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걷다보면 날이 저물고 쉬어가야 할 시간도 올 것이다.

‘아, 덥다’라고 입 밖에 내길 주저할 때쯤 어김없이 여름을 알리는 국토순례 일정 안내 문자메시지가 도착

한다. “2010 국토순례 코스. 전라남도 순천만 생태공원 일대 및 남도 삼백리길. 화랑단.”올 여

름엔 참가가 힘들다고 마음의 결정을 일찌감치 하고,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서운하고 아

쉽다. 그런데 삼일 만에 어이없는 자신을 본다. 한 스포츠상설매장에서 보내준 문자 한 통. “남녀 여름 기

능성 속옷, 배낭, 여름 샌들, 텐트 다량 입고 구매 고객님 사은품 증정.”눈에 띄는 낱말, 여름

샌들. ‘그래, 국토 순례 때 신을 스포츠 샌들을 하나 마련해야 하는데...... 맙소사, 언제 신을 거라구? 아, 중

독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국토순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체험하고, 느끼고 깨닫는 현장체험

학습의 시간을 제공해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십대들의 방학 캠프. 매년 참석하지는 못해도 십오 년째 여

름을 기다리게 하는 소식이고 그리운 시간이다.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사람들이 반갑고 편한 건 열흘 동안

 함께 먹고 자고 한 가지 일에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참석이 어려워 마음 접었다고 하면서도 여

전히 안테나가 그곳을 향하고 있나보다.

사마 천의 <<사기>>에 한 병사가 종기가 나서 괴로워하자 오기(吳起) 장군이 그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

아 빼내 주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고마워하기는커녕 슬프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유인즉 자신의 남편도 똑같이 오기 장군의 배려를 받았고 그래서 충성을 다해 싸우다 죽었는데 오늘 또다

시 장군이 친히 아들의 고름을 빼내 주었으니 아들은 오기 장군의 은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적

과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기 장군의 뛰어난 용병술을 말해 주는 일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건 한 병사의 극적인 이

야기이로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오기 장군의 행동은 일상적인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가장 신분이

낮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이 음식을 먹었으며 잘 때는 자리를 깔지 않았고, 행군할 때는 마차에 타

지 않았단다. 그는 싸움에 나가서는 함께 싸워야 하는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결국 오기는 사병들과

똑같이 행군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토순례 초창기, 김 선생이 지도자로 따라갔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그녀도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아무 걱

정이 없었다. 순례 도중 그녀가 잠깐 물차(중간 휴식시간에 아이들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조달해 주는 차)

에 탔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선 크림도 바르고 거울을 좀 보았던 것이 발단이었다. 그날 밤 아이들이 저희

들끼리 모여서 김 선생에 대해 심한 말을 한 것이다. 걸으러 왔으면 걸어야지 화장이나 하고 예쁜 척만 하

려 한다는 등 좀 거친 말을 했는데 마침 그 텐트 앞을 지나가던 김 선생이 들었단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와서는 다시는 국토순례에 가지 않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김 선생이 워낙 예쁘고 똑똑하고 인기

가 많아서 질투를 받은 부분도 있었겠지만 힘든 시간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던 예외를 봐줄 수 없었던 것

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네다섯 시까지 하루 종일 함께 걷다보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심지어 걷는 동안 한

번도 옆에서 걷지 않았어도 식사 시간이나 저녁 프로그램 시간에 만나면 인사를 공손히 한다. “오늘 힘들

었지?”라고 물으면 선생님도 같이 걸었으니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거라고 믿어서인지 말없이 씩 웃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지가 되는 것 같다. 순례를 하지 않고 선발대 역할을 하는 지도자에게도 인사를 하도록

 교육을 하기에 겉으로는 똑같이 인사를 하는 것 같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때로는 아스팔트의 열까지 받아

가며 갈증을 견디며 그 고통을 함께 한 이들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든 시간, 내

가 왜 이것을 시작했나 후회하기도 하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도 하게 되는 시간, 아이들은 자신

을 이곳에 보낸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하고 다

리는 천근만근 늘어져서 모든 것을 그만 접어버리고 싶은 시간, 그 모든 시간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만큼

한 편이 되기에 충분한 건 없다.

함께 보낸 시간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은혜로워진다. 더구나 그 시간이 힘든 시

간이었을 때 함께 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애틋함이란 건 말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각별한 느낌이리

라. 걷는 건 혼자 가는 길이다. 묵묵히 하루의 정해진 거리를 각자 걸어가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동지가 되어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어깨 한번 툭 쳐주고 씩 웃어준다. 함께 했

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준다.

출발지점에서부터 힘을 주고 함께 걸어주는 부모 형제가 있고 옆에서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의지가 되기

도 하는 친구들과 이웃도 있다. 이제 중반쯤 지난 지점에서 후반부를 함께 걸을 새로운 동지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기대도 해 보며 천천히 걷는다. 이십 년 삼십 년 후엔 삶의 어디쯤에서 만나 무엇을 함께 한 이들

을 기억할까. 함께 한 우리들의 시간은 모두 그립고 아름다운 길이 될 것이다.



시선. 201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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