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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월간문학, 2021년 1월호 발표)    
글쓴이 : 최선자    22-02-16 10:22    조회 : 2,326

                               거짓말 

                                                    최선자

  처음 소설을 써보고 깜짝 놀랐다. 머릿속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에피소드가 줄줄 나왔다. 내가 이렇게 거짓말을 잘했나? 나름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실망한 나머지 문우에게 말했다. 상상이지 무슨 거짓말이야? 그 말에 안도했지만, 어느 날 전동차 안에서 내 본색이 드러났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길역에서 인천행 전동차로 갈아탔다. 다리가 아픈데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앉았다. 전동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서서 말했다.

  ㅡ배가 고파서 그러니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ㅡ빵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빵이 든 쇼핑백을 내밀었다. 백화점에서 산 생식빵이었다.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옆 사람을 지나서 내 앞으로 왔다. 쇼핑백 안을 살짝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ㅡ밥을 먹고 싶어요.

  머리가 재빨리 가방 속에 든 돈을 헤아렸다. 만 원짜리 두 장, 천 원짜리는 고사하고 오천 원짜리도 없었다.

  ㅡ제가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와서 돈이 없네요.

    남자는 내 가방 속을 투시라도 한 듯 그냥 서 있었다. 뭐야, 배가 고프다면서. 보통 식빵 가격의 배를 주고 아들 먹이려고 일부러 샀는데... 가방을 열지 않았다. 한참 서 있어도 내가 돈을 주지 않자 빵을 받지 않고 한쪽 다리를 절며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앞으로 갔다. 양심에 찔린 내 눈길이 남자를 계속 따라갔다. 빈손으로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양심이 회초리를 들었다. 만 원을 아끼자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주겠지. 아무도 안 주었잖아. 다른 곳에 아껴라. 몰라.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온통 활자가 그 남자로 보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찬가지였다. 혹시 저 사람 식구들 밥해 먹일 쌀을 사려고 했을까? 집에는 아이들이 굶고 있는지도 몰라. 책을 도로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남자는 다음 칸 맨 뒷자리에 앉은 사람 앞에 서 있었다. 거짓말한 게 부끄러웠지만, 가방에서 만 원을 꺼내 주었다. 남자는 고맙다고, 복 받으시라고 말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리가 없어서 내내 서서 왔다. 병이 난 왼쪽 다리가 몹시 아팠지만 양심은 웃었다.

  나쁜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러다가 꼬리를 밟히기도 한다. 거짓말은 꼬리가 길다. 재빨리 꼬리를 이어 붙이지 못하면 상대에게 들키기 쉽다. 처음 거짓말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한다는 말이 있다. 얼마 후, 작은딸 자녀인 아홉 살짜리 외손녀 수영이가 그걸 증명해주었다.

  ㅡ할머니 죄송해요, 향수 시 쓴 거 사실 베껴 쓴 거예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이번에 제가 쓴 시 만들게요. 그거 책에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카톡을 확인하고도 손녀가 더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답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3분 후, 다시 카톡이 왔다.

  ㅡ죄송해요.

  ㅡ오냐, 그래라.

  ㅡ감사합니다. 다음부턴 거짓말 안 할게요.

  ㅡ네가 할머니 생일 선물로 시를 꼭 써주고 싶었구나. 그런 마음에서 거짓말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라.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도 나쁜 거란다. 잘 못써도 할머니 우리 수영이가 직접 쓴 시가 훨씬 더 좋아. 할머니 마음 알지? 수영아, 사랑해.

  내 생일이었다. 수영이가 선물로 시를 써왔다. 벅찬 감동으로 울컥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뭘 가장 좋아할지 고민했을 걸 생각하니 기특하고 고마웠다. 거기에 처음 쓴 것으로 아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직접 쓴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다는 손녀의 말에 의심하지 않았다. 수영이 언니와 큰딸 자녀인 손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수영이는 글쓰기에 소질이 많은 줄 알았다. 손녀들의 뛰어난 재능에 감사한 마음으로 더 즐거운 날이었다.

  일주일쯤 지나고 작은 딸네 집에 갔다. 수영이한테 언니들이 쓴 시랑 같이 시집을 내주겠다며 또 시가 생각나면 쓰라고 말했다. 아마 그때부터 걱정했을 것이다. 다음 날, 수영이가 부담스럽다고 자기가 쓴 시를 책에 넣지 말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네가 시를 너무 잘 썼으니 자랑하고 싶다고 답을 보냈다. 그러면 책에 넣지 말고 할머니 지인들한테만 자랑하라는 답이 왔다. 시를 아주 잘 썼으니 너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러워하라고 달랬다. 평소 수줍어하는 아이라 그런 줄 알았다.

  수필을 쓰면서 소재를 거의 사진을 찍어서 보관했다. 나중에 혹시 원고를 묶게 되면 작품 뒤에 넣을 참이었다. 손녀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에 계획을 변경했다. 사진 대신 손녀들 그림을 넣기로 했다. 셋이 다 그리라고 했더니 수영이는 싫다고 빠졌다. 두 손녀가 그린 그림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손녀들은 책이 나오자 그림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그림 실력이 좋아서 사방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수영이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에 다음에는 너도 꼭 그리라고 말해줬다.

  할머니가 좋아할 선물, 시를 쓰고 싶었으리라. 수영이가 한 시간 걸려서 시를 썼다고 했다. 도저히 안 써지니까 남의 작품을 베낀 모양이었다. 손녀가 이미 잘못을 알고 반성했으니, 혼자만 알고 덮었다. 모든 게 내 욕심이었다. 그날 나도 손녀들을 보면 시를 쓰라고 부추겼던 걸 후회했다.

 월간문학 2021,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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