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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뜨락 <한국산문> 5월 특집    
글쓴이 : 최선자    22-05-12 19:54    조회 : 3,502

                                                   마지막 뜨락

                                                               최선자

 

  제주공항에 내리자 만감이 교차했다. 제주도는 사 년 전에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가 될 뻔한 곳이다.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예약하던 아들 옆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 출발 날짜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시고 나는 암 수술을 받았던 그해 겨울에서 자주 서성거렸다. 공항에서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숙소로 이동했다. 건물에 들어서다가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에 눈길이 멈추었다.

  유방암 검사 결과를 확인하려고 병원에 간 날이었다. 악성이라고 해도 막 씨앗을 뿌려 놓은 상태니까 안심하라는 의사 말은 진료실의 공기가 날름 주워 먹었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의사의 말뜻을 헤아렸다. 믿고 싶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벽을 맞는 날이 늘어갔다. 내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나고, 서러웠다. 나 자신은 까맣게 잊은 채 아내, 엄마, 가장으로 삼십 년 넘게 살았다. 남편이 떠나고, 자식들도 성인이 되었다. 그제야 잊었던 나를 찾겠다고 만학도가 된 지 4년째였다. 신경이 곤두서 누가 거슬리는 말 한마디만 해도 덤벼들곤 했다.

   날마다 고치 안의 번데기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번뇌가 날개를 키워 강릉으로 날아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변에 나가 동백꽃잎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자식들을 위해 인내로 다진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왜 벌써 가야 하는지, 왜 이렇게 고생만 하다 가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회오리치다 사라지길 수십 번 반복했다. 낮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시위라도 하듯 걷고 또 걸었다. 시간이 흐르자 분노도 지쳐갔다.

  강릉항 방파제에 앉아서 바라본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저, 모난 곳 없이 동그란 흰 문자로 자꾸 문장을 썼다. 내가 채 읽기도 전에 테트라포드가 지웠다. ‘언젠가는 방파제를 넘으리라.’ 겨울바람이 만진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을 때쯤 바다의 문장을 해독했다. 절망이 갉아 먹은 마음에 바다가 가르쳐준 희망을 심었다.

  아버지는 내 사정을 몰랐다. 병문안을 오지 않는 딸을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을 게다. 아들을 잃은 참척을 당하고 부끄러워 마을회관에도 나가지 못하겠다던 팔순의 아버지. 이제 곧 아들을 만날 텐데 간암 말기인 당신의 병명도 모른다. 자식들이 차마 말을 못 한 것이다. 아버지를 미워한 철없던 시절이 떠올랐다. 손수건을 쥐고도 고향 가는 고속버스 차창은 자주 흐려졌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님 두 분도 성년이 되기 전에 떠났다. 그래서였을 게다. 외할머니의 데릴사위이자, 청각장애가 있는 엄마와 결혼한 것은. 말로 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을 술로 풀었던 듯하다. 술에 취하면 폭력을 쓰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가 부러웠다.

  상처는 무의식 속에서도 살았다.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지울 수 없는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끔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들고 친정집을 홀로 지키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버스로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마을 어귀에 도착할 때까지 서너 번씩 전화해서 어디쯤이냐고 묻던 당신과 달리 난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만나면 한없이 반갑고 해마다 더 좁아지는 등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다. 마음과 몸이 따로인 자신을 질책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딸을 매번 읍내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었다.

  병실에 들어서자 환자답지 않게 밝은 얼굴로 반가움을 표했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에 일이 바빴냐고 물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더니 겉으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ㅡ아버지, 제주도 가셨으면 좋겠는데. 비행기표랑 아직 취소 안 했어요.

  ㅡ한 번씩 겁나게 아프다. 거그서 그러면 어쩌겠냐. 너는 갈래?

  ㅡ가고 싶어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고 병문안도 안 오던 딸이 아닌가. 섭섭했으리라.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할 때만 해도 나는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아버지는 여행 제안에 좋아하셨다. 출발하기 열흘 전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다음 날, 돌아가겠다고 나서자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하지만 병원 예약도 있고, 곁에 있다가는 말실수를 할까 조심스러웠다. 남동생도 암세포를 이기지 못했는데, 나까지 암인 걸 알면 벅찰 것 같았다. 부모에게 참척만큼 큰 상처가 있을까?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고 무너졌다. 행동은 물론 호기롭던 말투까지 바뀌었다.

  강릉에서 돌아온 후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지만 착잡했다. 어려서부터 애증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까지 겹쳤다. 내 항공권은 취소하지 않았다.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이었다. 최악의 경우 어떤 식으로 주변을 정리할지 생각하던 즈음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혼자서 제주도에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스산한 몸을 감싸주었다. 건강한 몸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가파른 삶에 허덕이던 때 돌아가신 친정엄마. 아버지께는 잘하리라 다짐했지만, 여전히 자식들이 먼저였다.

  바닷바람을 쐬고 관광도 하면서 머리를 비우겠다던 여행 목적은 허사였다. 방 안에서 창밖의 부드러운 능선의 오름, 먼바다만 눈에 담았다. 자연에 빠지면 어판장 바닥의 생선처럼 팔딱거리던 감성도 동요하지 않았다. 마침 제주43평화공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공원을 두어 번 산책하고 돌아왔다.

  다행히 큰 수술은 아니어서 나흘 만에 퇴원했다.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딸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렸던 듯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도 뜨지 못했다. 제주 여행 직전에 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혹시 아버지가 말을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내려갔다.

  그날 밤, 처음으로 부녀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마 당신이 중병인 걸 눈치챘으리라. 평소 데면데면하던 딸이 갑자기 어릴 적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했으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홉 살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엄마와의 결혼 직전에 이르렀을 때 암세포가 방해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상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내가 병간호를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환자복을 갈아입혔다. 욕창이 생길까 밤새 노루잠을 자면서 자세를 바꾸어 주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수술을 받아봤기에 마취에서 깨어날 때 청각 기능이 먼저 깨어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아버지가 들으시리라 짐작하고 그동안 있었던 사정을 말했다. 대화가 가능했다면 당장 돌아가 몸을 추스르라고 야단쳤겠지만, 기다림에 대한 서운함을 용서받고 싶었다.

  혼자서 밤낮없이 병간호에 매달렸다. 동생들은 걱정했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일주일 만에 지쳐서 언니와 교대했다. 집에 돌아온 지 이틀째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실에 도착해 보니 그새 심전도 모니터가 임종이 임박한 걸 보여줬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빌었다. 내 손을 잡아주던 장마철 흙담 같던 손, 그 힘없던 아버지의 손을 잊을 수 없다.

  사 년 전과 마찬가지 풍경이다. 오름이 방안을 들여다본다. 아버지는 하룻밤도 주무시지 못하고 떠나신 이 숙소를 예약한 걸 알려드렸을 때, 딸과의 첫 여행보다 더 기뻐했다. 손자의 직장과 관련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손자는 또 얼마나 기다렸을 것인가. 아들에게 전화해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손전화기를 당신 귀에 대드렸다. 손자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떠나셨다.

  그 겨울, 아버지의 마지막 뜨락에 똬리를 틀었던 미움이 여행 기간 내내 그리움으로 찾아왔다.

   

<한국산문> 5월호 특집,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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