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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최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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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글쓴이 : 최선자    22-08-05 07:38    조회 : 4,250

                                       촛불

                                                             최선자


   현관문을 열자 우르르 체리 향이 몰려온다딸이 집안에 향초를 켜 놓은 듯하다거실에 들어서자 추측대로 식탁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유리병 안에 체리 빛 초가 가득하다심지에서 타오르는 불빛으로 인해 체리 빛이 매혹적이다촛불이 내 그리움의 현을 가만히 만진다

  촛불은 단순히 밝음이 아니다호롱불을 켜고 살던 시대에는 밝기로도 으뜸이었지만어찌 불빛만으로 촛불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초는 온몸을 태우며 불을 밝힌다뜨거움을 참으며 울고 있는 듯 눈물처럼 촛농이 흐른다한갓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촛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장남이었던 동생도 촛불 같은 존재였다온몸을 태워 형제들의 길을 밝혀주고 떠났다부모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기에 어린 자식들과의 이별은 더 고통이었으리라동생에게 장남의 멍에는 천형과도 같았다농사일은 팽개치고 술독에 빠진 아버지청각장애인이셨던 어머니부모님의 짐까지 짊어지고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정작 본인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교에 진학했다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줄줄이 딸린 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도 못 할 형편이니 혼자만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2학년을 끝으로 휴학했다그때부터 동생들의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형제들 앞길을 밝히는 촛불이 된 것이다.

  대학교를 마친 동생들이 하나둘 취직했다동생의 짐이 조금 가벼워졌다그 틈에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했지만형제들이 많아서 여전히 장남의 멍에를 벗지 못했다가정까지 꾸리고 나자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다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꿈을 접고 연탄 도매업을 시작했다하루에 수천 장의 연탄을 트럭에 싣고 내렸다.

  연탄보일러가 기름보일러로 바뀌면서 수요가 줄어들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다직장생활의 월급은 씀씀이를 감당할 수 없었고 장사는 자본이 없었다화물차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짐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차량 정체 시간을 피하고자 차에서 새우잠을 자고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덕분에 동생들이 다섯이나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유리병 안에 가득한 초는 촛농이 고여서 심지를 둘러싸고 있다동생의 가슴에도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 흥건했을 게다운명이라 받아들였겠지만끝없이 이어지는 고단한 삶이 어찌 서럽지 않았으랴장남의 짐을 벗어날 무렵 자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평생 자신을 위해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그 와중에도 동생들을 다독이며 형제들의 우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막내 남동생은 우리 형제들의 우애를 눈여겨보던 사람이 중매해서 결혼했을 정도다번듯한 집안 규수로 요즘 보기 드문 효부가 들어왔다.

  가끔 친정에 다녀올 때는 동생과 함께 왔다일부러 도착지가 수도권인 짐을 주문 받아서 나를 태웠다어린 조카들과 힘겨운 누나의 차비도 아껴주고 도란도란 남매의 정을 나누고 싶었으리라차 안에는 운전석 옆에 늘 책이 있었다그 힘든 일상 속에서도 틈만 나면 독서를 했다그런 동생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다섯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지만전혀 지루하지 않았다시사는 물론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 집 앞이었다

  췌장암이라는 강풍에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오열하는 나를 동생은 오히려 위로하면서 말했다.

  “누나언젠가는 떠나야 할 길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시오나는 식구들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서 자랐소고생만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외할머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오른 촛불그것은 흠뻑 받고 자란 사랑의 힘이었다그때는 몰랐다슬하에 아들이 없던 당신을 대신해서 딸이 낳아준 손자라서 끔찍이 아끼는 줄로만 알았다외할머니는 동생이 촛불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 안타까움에 더 사랑을 쏟았으리라.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의사 말에 겨우 3개월 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걱정하는 내 말에 일손을 놓으니까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둘러대며 환히 웃던 동생어찌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넉넉하지 않은 살림이 사지로 내몰았을 게다무리한 탓이었는지 암이 재발했다수천만 장의 연탄과 짐을 오르내렸을 어깨평소에도 가끔 아프다고 하더니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병이 중해지자 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를 만졌다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매화도 산수유 꽃도 울고 있는 듯 꽃잎이 지던 날, 가물거리던 촛불은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어이 꺼졌다고단한 삶을 사랑으로 상쇄하며 견디어낸 동생은 한창 공부 중인 삼 남매를 남겨두고 떠나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했다정말 열심히 살았다고고생했다고조카들은 형제들이 돕겠다고편히 가라고 눈을 감겨주었다촛불처럼 타오르던 동생의 육신은 떠났지만형제들 가슴에 영원한 향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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