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학과
김경선
요즘
들어 서른 살 먹은 딸이 부쩍 엄마의 삶에 대해 지적을 많이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
인지를 생각해 보라며. 그래서 고민 끝에 글을 좀 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등록을 했다. 처음 내 소개를 하는데 나의 대학 전공에 대해 놀라시는 분들이 많았다. 중앙대 연극 영화과가 아무래도 선후배 중에 연예인이 많은 과라서 그런가 보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것을 하기에는 자격이 많이 부족 했었고 또 전공을 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 밝혀야 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아프고 창피한 이야기지만.
숙명여고 3학년 올라 가자 마자
어머니가 갈 데가 있다고 하며 나를 데리고 가신 곳이 아버지가 따로 살림을 차린 집이었다. 다행히 사람은
없었고 집안만 보고 돌아왔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 이었나 보다. 그날 이후로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으며 교실에 앉아있어도 나도
모르게 상체가 책상 위로 자꾸 엎어지며 걸을 때도 다리가 없는 것처럼 휘청거렸다. 집에서 끙끙 앓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지금의 삼성강북병원인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이ㅇㅇ 박사님께 데리고 가셨다.
요즘이라면 환자와 의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겠지만 그때는 어머니와 둘이
의사와 함께 내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머니께서 무어라고 하셨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의사의 말이 "고3병이고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던가 아니면 하지 마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약을 한 보따리 지어서 집에
돌아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 의사는 엉터리야
고3병은 무슨 고3병' 하며
그 약을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내가 자꾸 성적이 떨어진다고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시며 열심히 하라고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들이 어찌 그리 무관심했으며 무지하셨을까.
학생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 상담도 해주고 원인을 밝혀서 도와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점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책을 펼치면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일 뿐
그 내용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은 가야 하는데 성적은 자꾸 떨어지고 재수를 하는 것도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재수를 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다. 지방대학에
가는 것도 나 혼자 타지에 가서 사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내 짝꿍이 자기는 중앙대 연극 영화과에 가야 겠다며 그 과는 성적을 50프로만 보고 개인의 특기를 교수님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 시험이라는 말을 했다. 귀가 솔깃해졌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나를 무용, 스피드스케이트, 피겨스케이트, 수영, 웅변
등 특기교육을 계속 시키셨다. 난 교수님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무용과 웅변을 연습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용전공을 한 친구 언니에게 부채춤 몇 가지를 배우러 다녔다. 웅변은 혼자 연습을 했다.
중앙대학교에 원서를 내러 갔을 때, 어려서
무용대회를 나간 곳이 바로 중앙대 강당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실기시험은 조그만 소강당에 교수님 5~6명이
객석에 앉아 계시고 수험생은 무대에서 자기 특기를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덜덜 떨리는 몸과 마음으로 간신히
부채춤과 웅변을 하고 내려왔다.
그렇게 나는 중앙대 연극 영화과 학생이 되었다.
학교생활은 2학년 2학기부터 한 학기에 3학점을 위해 연극 한편씩을 무대에 올려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들어간 학과에서 한 학기에 한편씩 연극을 위해 날마다 연습을 하는 것이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복학한 선배들과 연습한 연극을 군산까지 가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군대처럼 선배들이 후배 길들이는 체벌도 간혹 있어서 학교생활을 그저
즐겁게만 할 수가 없었다.
한가지 특별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작고하신 국문학과 임 동권교수님께서 국문학과 수업을 들으며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도와 주셔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써먹을 일은 없었지만.
5편의
연극과 중등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논문까지 무사히 써 내고 졸업을 하였고 내 전공이 연극 영화학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