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과 고양이
출근을 하려고 대문을 열었다. 골목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그 앞에는 조그마한 것이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새끼 고양인가 싶었는데 꼬리가 길었다. 자세히 보니 생쥐였다. 나도 모르게 마스크를 내리고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쥐니?
고양이는 마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쥐를 물고는 앞집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쥐라니...!
동네는 길고양이로 넘쳐났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동네는 마치 고양이가 점령한 것 같았다. 회색, 검은색, 줄무늬 등등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고양이들이 골목을 배회한다. 가끔 우리 집 담장을 타고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나뿐이다. 고양이는 움찔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를 보고는 ‘야옹~’하며 날쌔게 달아난다. 마치 ‘내가 더 놀랐잖아?’하는 것처럼.
유기견, 유기묘가 많다는 기사는 봤지만,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반려동물을 길러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친한 동생네 놀러 갔다가 집 뒤가 산이라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정색을 한다. 산에 고양이들이 산다며, 이것들이 무리를 짓고 다니는데 ‘짐승’들이 되었다며, 너무 무섭다고 말이다.
고양이는 낮이나 밤이나 끊임이 없다. 저녁 퇴근길엔 마음 좋은 캣맘들이 놓아준 고양이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만났고, 밤이면 갸릉갸릉하며 아이 우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낮에는 영역다툼인지 모를 신경질적인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다. 아침나절에는 골목 어귀 고양이들의 배변과 만났다.
지난겨울 이사를 했다. 계약 기간이 다 끝나지도 않았지만, 바퀴벌레가 하도 들끓어서 이사를 해야 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셔야 해서 집이 깨끗했으면 했는데, 다행히 이사한 집은 남향으로 해가 잘 들어오는 2층이었다. 들어가는 초입 마당에 작지만 화단이 하나 있었고, 거기에는 넝쿨장미가 자랐다. 운치 있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본질을 보기 전까지는.
이삿짐을 얼추 정리하고 나니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화단 위에는 쓰레기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는데, 전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이었다. 화단은 마치 버려진 것 같았다. 가까이 가니 이상한 악취도 났다.
날이 좋은 날. 화단을 정리하려고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한 차례 아버지가 화단 주위에 어지러운 쓰레기를 버렸는데도 화단은 이상하게 지저분했다. 아무래도 화단이 휑해 보여, 이름 모를 꽃 몇 가지를 사와 심어볼 양으로 꽃삽을 들었다.
아뿔싸! 흙 속은 쓰레기장이었다.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다. 흙을 파면 팔수록 끊임없이 쓰레기가 나왔다. 소주병부터 사기그릇, 페트병, 검은 봉지까지... 검은 봉지에는 먹다 버린 홍합 껍데기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화단에 쓰레기를 버린 이유는 뭘까? 의아해 하며,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던 청소는 오후 내내 이뤄졌다. 땅을 더 파기가 두려울 정도로 쓰레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단 주위에는 누군가의 배설물도 가득했다. 분명 길고양이 짓일 거다. 배변의 흔적을 지우고, 썩은 내가 나는 흙도 버렸다. 화단을 정리하고 나니 과연 이 화단에는 생명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생명력이 강한 장미넝쿨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꽃을 피웠던가. 아무튼 흙이 있고, 물이 있으니 뭐라도 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사온 꽃을 심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화단의 흙만 잘 정리해뒀다.
다음 날. 출근하려는데,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뭐지? 자세히 보니 똥. 고양이 배설물이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화단에 얌전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는 똥. 고양이 배설물 냄새는 생각보다 고약했다. 처음 접하는 거라 머뭇거렸지만, 치워야 했다. 치울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니 화단에 흙이 있으니 고양이가 똥을 싸는 건 당연했다.
고양이는 임자가 있는 땅(식물의 공간)은 건들지 않는다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월로 퇴근길에 흙을 사왔다. 한바탕 흙을 버렸기 때문이다. 흙을 깔고 사왔던 꽃을 심었다. 드디어 제법 그럴듯한 화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을 주면서 기도했다. 더 이상 누구의 화단이 아닌 내 화단이 되길.
다음 날. 쾌적한 화단을 보았...아니? 이번엔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고양이 똥이 있었다. 화가 났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바로 인터넷 창에 ‘고양이 퇴치’라고 검색을 해보니 고양이는 오렌지, 레몬향을 싫어한단다. 커피가루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잘 아는 카페에 들려 잘 말린 커피가루를 얻어 왔다. 마트로 달려가 레몬향이 나는 탈취제를 샀다. 화단 곳곳에 커피가루를 뿌리고, 탈취제를 뿌렸다.
그리고 다음 날. 기분 좋게 계단을 내려가는데, 보고야 말았다. 계단 끝에 보란 듯이 놓여있는 흔적. 고양이들의 똥을. 정말 나하고 한번 해보겠다는 건가?
주말 날을 잡아 계단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다. 물청소를 말끔하게 하고선 탈취제를 아낌없이 뿌렸다. 이놈의 고양이들하고 담판을 내겠노라는 심정으로. 이후 며칠간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야 드디어 고양이를 물리쳤노라고 기뻐하고 있을 때쯤, 방심한 틈을 탄 것일까. 어느 새 고양이는 화단을 또 다시 점령했다. 화단에 심어둔 꽃 사이에 똥을 내지르고 간 거다.
다시 검색을 시도했다. 믿을 데라곤 인터넷 검색뿐. 그리고 찾은 한 커뮤니티에서는 모두 한결같이 ‘캣맘’이 되라고 했다. 고양이는 화장실과 밥자리를 구분하니, 그걸 이용하라는 거다. 사실 이건 고양이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고양이라니. 고양이라는 말에 질색팔색 하는 어머니를 보자 캣맘이 되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다. 식구들은 화단을 없애 버리자고도 했다. 세를 사는 마당에 남의 화단을 어떻게 없애겠는가.
결국 고양이가 화단을 화장실로 이용하는 거라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길고양이들이 남긴 뒤처리만 감당하면 되는 거니까. 대신 화단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어놨다. 고양이의 침범이 너무 빈번하지 않게. 장미 넝쿨의 죽은 가지를 잘라내 고양이 다니는 길에 웉타리를 만들고, 돌덩이를 주워와 화단 주위를 둘렀다. 화단의 꽃은 이미 계속 죽어갔다. 몇 번을 다른 꽃으로 바꿔봤지만, 보름을 못 넘기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엔 국화를 심었는데, 곧 죽을 것 같더니만 꽃을 피웠다. 그것도 두 송이나. 기특했다. 고양이는 매일 쉬지 않고 흔적을 남겼다. 비닐 봉투는 상비용으로 화단 근처에 마련해뒀다.
오늘도 출근하기 전 고양이의 변을 치운다. 그나저나 이 화단에 일을 보는 고양이는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