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송민영
직장인의 하루는 늘 뭉그적거리다 망치기 마련. 알람 소리에 탄식을 길게 내뿜고 나서야 일어난다. 모자란 잠을 쫓으며 비몽사몽간에 씻고 나면 겨우 정신이 든다.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뭘 입고 나갈지를 정한다. 옷을 정하기만 하면 일사천리. 아침을 챙겨 먹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누구는 아침을 먹어야 뇌가 깨어난다고 했지만 그런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겨우 몸단장을 마치고 나온 출근길.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어제 못다 본 드라마를 켜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인산인해를 이룬 정류장.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정류장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스마트폰에 시선을 떨어뜨리다가 버스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든다.
버스 두 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힘차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 문을 열면 8시 55분. 출근 5분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 컴퓨터를 부팅시키며 화장실로 간다. 손을 씻고 아침 볼일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책상에 앉으면, 9시 10분. 건물 내에서 코로나 안전 수칙 고지방송이 흐른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방송을 들으며 손을 소독한다.
업무의 첫 시작은 항상 메일 체크.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에 돌입한다. 간간이 들어오는 친구들의 톡. 바쁘게 오전 시간이 지나면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한동안 전염병이 무서워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지만, 아침마다 도시락을 챙기는 것도 어느새 귀찮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 밖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즐기려면 10분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 이미 일찍부터 채비를 한 사람들로 붐빈다. 식당가에는 늘 그렇듯 맛집 앞은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섰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혼자서 식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혼자 먹기 편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회사 건물 맞은편 지하 식당가에 위치한 ‘꼬마스낵’. 오늘은 분식이다. 이곳은 가격이 저렴하고 메뉴 구성도 다양하다. 맛도 나쁘지 않다. 게다 기다림을 위해 준비된 만화책까지. 물론 성인 무협지이지만, 옛날 학교 앞 분식집이 생각나는 그런 곳이다.
누군가는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라고 하겠지만, 식당 초입부터 보이는 식당의 조리기구며, 선풍기, 식탁까지 때가 꼬질꼬질하다. 옛 흔적이 남았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그냥 더럽다. 한번은 식탁 위를 유유히 지나는 바퀴벌레를 본 적도 있으니. 사실 바퀴벌레를 본 이후 한참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또 찾아오게 된다.
유튜브의 볼륨을 크게 켜두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던 사장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하던 일을 멈춘다. 조리실로 들어가기 전 전자출입명부를 요청한다. ‘접종완료’라는 반가운 메시지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잡는다.
한쪽 벽면으론 부족한지 추가 메뉴는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손님들의 요구가 있어 때마다 늘어난 메뉴판이다. 잠깐 고심한 후 잔치국수를 시켰다. 아주머니는 국수를 잘 말았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가게 안을 살펴본다. 선반에는 암웨이 제품이 가득 차 있다. 보기 드문 브라운관 TV에서는 지상파 방송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을 뒤적뒤적하다 보니,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매운 고추의 양념장을 얹은 국수는 알맞게 칼칼했고, 면도 후루룩 넘기기에 좋다. 식사 후에는 커피 타임. 바닐라 시럽을 듬뿍 넣은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공원을 걷는다. 걷다 보면 혼자가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근방 회사 건물의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한 손에는 커피를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걷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으로 함께 걷는 것이리라.
걷다 보니 점심시간은 끝이 보이고 다시 회사로 복귀. 오후 1시 10분이면 으레 코로나 안전 수칙 방송이 고지된다. 화장실에서 양치질 후 오후 업무에 돌입한다.
마침 회사로 택배가 왔다. 알라딘에서 주문해둔 <콘텐츠가 전부다> 책이 도착한 것. 책을 잠깐 훑어보다가 저녁에 보자 하고, 책을 가방에 챙겨 둔다.
6시 퇴근이지만, 업무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30분 초과. 퇴근을 서두르며 집으로 가는 길. 미처 다 못 걸은 공원을 한 바퀴 더 돌고 나서야 버스에 오른다. 7시 30분. 집에 도착해 저녁 일정을 정리한다. 저녁을 먹고,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덧 9시. 씻고 나니 비로소 내 시간이 생긴다. 학교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정비한다.
잠깐의 여유. 넷플릭스를 열어 신작을 살펴보다가 유튜브를 뒤적이다 보면 새벽.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오늘 오후에 받은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런 또 읽지 못했다. 내일은 꼭 봐야지. 다짐한다. 불을 끄고 알람을 맞추고 선물로 받은 안대를 한다. 내일의 일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