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미용실
김선희
허름한 미용실만 찾아다니는 엄마에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의 대답은 생각 보다 단순했다.
“그게 말이야, 조금이라도 쌀까 해서.”
뭘 하든 돈 생각부터 하는 엄마가 나는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이사를 갔는데도 굳이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
살쾡이처럼 쏘아붙이는 말에 엄마는 되려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엄마의 단골 J미용실은 아주머니 혼자 운영을 하는, 말 그대로 가격이 저렴한 곳이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단골손님들이 죄다 동네 할머니들이라 미용비를 올릴 수가 없다고 푸념을 했다. 아주머니의 차가운 한숨에 동결이 된 가격은 경기를 타지 않았고 미용실 안은 늘 동네할머니들로 북적거렸다.
외가의 동안 유전자를 물려받아 열 살 정도는 아래로 보였던 엄마는 그와는 반대로 머리가 남들보다 일찍 세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미용실을 찾았다. 그날도 엄마는 뿌염을 하고 왔다. 서비스로 드라이 받은 게 아깝다면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멀쩡하게 꽃구경까지 다녀오고 네 살 된 손주 녀석과 칼싸움하면서 놀아주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경색. 심각한 뇌손상으로 개두술을 피할 수 없었다. 엄마는 결국 검은 머리, 흰머리 모두 남김없이 밀어야 했다. 그 후로도 두 번의 수술이 더 필요했고 우리 가족은 그 기로에서 매번 잔인하고 중요한 결정의 기로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갔다.
엄마의 세 번째 수술 상담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징그럽게도 화창한 날씨가, 코를 간지럽히는 꽃향기가 염장을 질러댔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파묻고 걷고 있는데 J미용실 앞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유리문안의 미용실 풍경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주인아주머니도, 그 안에 있는 단골손님들도 샘이 날 정도로 모두 그대로였기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문을 열었다. 그동안은 안중에도 없었던 종소리가 문을 밀자마자 거슬리게 딸랑거렸다. 낯익은 할머니와 쉴새 없이 떠들며 머리를 말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 대뜸 엄마부터 물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 엄마는 요즘 왜 안 오셔?"
엄마가 쓰러졌다는 내 대답에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손은 쉼 없이 머리를 말고 있었다. 문병을 가야겠다고 병원을 물었지만 나는 달라진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게 편치 않았다. 조금 나아지면 다시 찾아뵙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기도했다. 엄마와 다시 이곳을 찾게 되기를.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뇌수술 때문에 밀어버린 엄마의 머리가 그새 자라 있었다. 그동안 염색약으로 가린 머리카락이 하얗게 완벽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흰머리 보기 싫다고 한 달에 한번 꼭 미용실에 다니더니 본인 머리색깔이 까만색인지 하얀색인지도 알지 못하는 엄마를 붙잡고 나는 중얼거렸다.
“엄마, 빨리 일어나서 J미용실 다시 가셔야지. 아주머니가 기다리시더라."
들리기는 한 건지, 듣고도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엄마는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결국 엄마는 J미용실을 다시 찾지 못한 채로 살이 에이도록 추웠던 2020년 겨울에 세상을 등지셨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그토록 허전하고 힘들던 엄마가 떠나간 일상도 수많은 일들과 사연들로 메워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외출을 위해 거울을 보니 어느새 머리카락의 뿌리가 자라 희끗하다. 내일은 뿌염 하러 미용실에 가야겠다. 흰머리가 유전이라는 증거는 과학을 따질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동안이나 유전 될 것이지 하필 이걸 물려받았네.’
그래도 다행이다. 내 머리가 희끗해지는 걸 엄만 못 보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