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추가
금현주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컴퓨터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이 둘을 많이 쓰는 일을 했었다.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이 프로그램들 창을 띄워 놓아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색과 모양을 편집하다 보면 뒤로 되돌릴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잘 된 걸 찾기 위해서다. 'Control'키와 'Z'키를 동시에 누르면 전단계로 돌아간다. 방금 실행한 걸 취소해 주는 단축키인 셈이다. 작업 중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기능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채화를 그렸었다. 디자이너가 되기 전부터 그림의 기본기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림 동아리 활동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했었다. 이는 매주 한 장씩 그려가야 하는 '빡센' 동아리 활동이었다. 회사에서 종일 작업을 하고 집에 오면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수채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은 지울 수가 없다. 종이에 물감을 묻힌 붓이 닿으면 땡이다. 물론 물을 묻혀 수정할 수도 있겠지만 지저분해지거나 탁해진다. 자칫 망칠 수 있다. 습관이 무섭다. 신중하게 그려야 하는데 손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과감해진다. 아무래도 무의식 중에 '컨트롤 제트'를 믿었나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건 컴퓨터가 아니지. 바로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림 그리기에 신중함을 더해 집중한다. 취소할 수 없다고 되뇌어야만 한다.
이런 현상은 그림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계속된다.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떨어뜨려 깨졌을 때도 '컨트롤 제트', 요리를 하다 소금을 많이 넣어 짤 때도 '컨트롤 제트', 물을 따르다가 흘렸을 때도 '컨트롤 제트". 순간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자칫 행동이 가벼워질 수 있다. 아니면 말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다 '컨트롤 제트' 때문이다.
문득 살아가면서 진짜 실행을 취소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실행을 취소하는데 이 기능을 쓸까? 만약에 결혼을 취소한다면?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혼자 외로운 삶이 될 수도 있고 이쁜 두 딸을 못 만날 수도 있으니 결혼 취소는 취소하는 걸로 해야겠다.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실행을 취소하고 싶은 것보다 실행을 추가하고 싶은 게 잘 떠오른다. 이래서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백번 낫다'라고 하는 건가? 적어도 나한테는 해당하는 말이지 싶다.
학생 때 국어 과목을 제일 못했다. 그래서 싫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이 재밌는지 몰랐기에 책을 멀리했었다. 나중에 직장 생활을 하게 됐을 때 출퇴근 시간이 길어 자연스레 책을 읽게 되었다.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일상을 짧은 글로 기록했던 때가 있었다.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그 시절 글을 보면 어렴풋한 그때 생각들이 선명해지는 걸 느낀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괜찮게 쓰고 싶어졌다. 이제와 글을 쓰려니 어휘력은 바닥이다. 그저 책과 담을 쌓고 지낸 시절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러기에 되돌아가서 추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무조건 독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무언가를 추가하는 건 현재든 미래든 가능하다. 지나간 과거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추가해 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자, 이제부터 독서 추가요! 더불어 글쓰기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