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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 반병    
글쓴이 : 김현주    24-03-30 15:41    조회 : 2,524
소주 반병

금현주

  어느 날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갑 친구가 내게 와서 하소연을 했다.

"너한테 갈 사람들이 다 나한테 와서 술 마시자고 하는데 어떡하냐?"

"아니 왜?"

"너보다 내가 술 잘 마시게 생겨서 그렇겠지"

"푸하하하 너 억울하겠다"

 

  20대였던 당시 내 주량은 소주 반병이었다. 아니 대충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다. 분위기 맞춰 적당히 마시는 정도였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안주를 좋아했고 술은 중간에 목을 축이는 정도로 조금씩 마셨다. 생각해 보니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취할 만큼 마셔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전 직원 종합 건강검진을 지원했다. 이는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실시했다. 직원들은 여럿이 나눠 함께 이동하며 다양한 검사를 받았고 마지막으로 했던 게 수면으로 하는 위내시경 검사였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소주 반병 정도요"

먼저 검사받은 사람들이 일러주었다. 검사 전에 수면진정제를 투여하는데 양을 가늠하기 위해 주량을 물어본다는 거였다. 팔에 꽂아 둔 주삿바늘을 통해 약을 넣고 묶어 놨던 고무줄이 풀리고 동시에 정신을 잃은 것 마냥 수면에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검사실이었고 검사가 끝난 직후였다. 

 

  그다음 날 검사받은 회사 사람이 담당 의사한테 들은 얘기라며 전해줬다. 

"그 회사에 어제 수면내시경 한 여직원이 있어요. 내가 수면내시경을 많이 해봤지만 검사 끝나자마자 바로 깨서 멀쩡하게 가는 사람은 처음 봐요" 

보통은 검사 후 간호사가 부축하고 회복실로 옮겨 완전히 깰 때까지 쉬다가 귀가한단다. 직원들은 사무실로 와서도 비몽사몽 엎드려 있기 일쑤였다. 그런 반면 나는 누구의 부축도 없이 바로 옷을 갈아입고 가뿐하게 걸어서 회사로 왔다. 사람들은 내가 소주 반병에 비례한 약이 금방 깰 정도였기에 분명 주량이 훨씬 많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 모양이다. 술이 센 거라고.

 

  회사에서 비교적 얌전한 내 성격을 감안하고서 호탕한 그 친구가 술이 더 셀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정신력이 강한 거지 주량하고는 무관한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검사 전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앞에 검사받고 나오는 사람이 비틀거리며 비몽사몽한 모습을 봤다. 주변에 죄다 회사 사람들인데 민망할 수 있겠네 생각했다. 긴장하며 정신 바짝 차리고 나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랬던 거라고 생각했다. 왜 다음날 아침 중요한 일이 있어 내일 몇 시에 일어나야지 하고 자면 정확히 그 시간에 잠이 깰 때 있지 않나? 아닌가? 내 주량이 생각보다 많았던 거고 그에 비해 약이 부족했기에 빨리 깬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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