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의 40대이다.
유은영
나는 대한민국의 40대 후반 여성이다. 대학만 나오면 무조건 취직은 된다고 믿었고, 1995년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1997년 가을 찾아온 IMF 구제 금융 사건은 무조건 취직이라는 믿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1999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이 발표한 ‘정부 지원 인턴 제도’ 덕분에 나는 간신히 취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인턴이었다. 정규직 전환조차 보장되지 않는. 그럼에도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월급이 6개월씩 밀려도, 거의 매일 철야 근무를 시켜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기에 건강도 챙기지 않은 채 일만 했다.
건강을 챙기게 된 건 30대 중반 이후,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 이후였다. 출근길이었다. 늘 건너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그르르 하늘이 돌았다. 털썩, 눈앞이 까맸었다. 후…. 이대로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칠 즈음에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나는 감사하단 인사만 간신히 한 채, 겨우 일터로 향했다.
‘만성피로증후군’ 그것이 내 병명이었다. 자도 자도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그런 병. 치료법이라고는 휴식밖에는 없는 병을 나는 앓고 있었다.
이 병으로 인해, 일밖에 모르고 살던 나는 백수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2024년 현재, 나는 대한민국의 40대 후반이다. 10년의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에 복귀했다. 이런 나에게 대한민국은 조금, 아니 꽤 혹독하다. 함께 일하는 20대 중 몇 명은 나에게 꼰대라며 당신들 40대들이 일감을 다 챙겨가서 본인들이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70대 중 몇 명은 나에게 말한다. 너는 아직 나보다 젊으니까, 나이 많은 내가 할 일도 다 가져다가 하라고.
작년에 거의 회복 단계였던 만성피로증후군 증세가 재발하고, 아토피 증세가 심해지는 일이 있었다. 주말이면 나는 성당에 나가곤 했다. 성당에는 문학모임이 있는데, 신자 한 분이 이름만이라도 올려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긍정의 답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는 회원 대부분이 70대인 문학모임에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참석조차 하지 않은 회의에서 성당 시화전 파워포인트 작업을 나에게 맡겨 버렸다. 회장은 내게 모든 디자인을 일임한다고 했었다. 또한 작업물의 크기도 B4 사이즈라고 알려주었었다. 그래서 회장이 알려준 작업물의 크기에 맞추어서 편집을 진행했다. 얼마 후 가편집본이 나와서 회장에게 보내주었다. 회장의 최종 확인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업물의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A3 사이즈로 수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의 시 배경 그림은 자신의 그림으로 하고 싶으니 따로 편집을 해달라고도 했다. 나는 부회장에게 물었다. 회장이 아는 내용이냐고. 지금 거의 완성 단계인데 이제 와서 작업물의 전체 크기를 바꾸면 모든 편집을 다시 해야 하는데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냐고. 부회장은 조금 당황하더니, 크기 바꾸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바꾸면 안 되겠냐는 말도 했다. 결국 나는 회장과 다시 이야기하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은 여전히 B4 사이즈가 좋은데 부회장이 자꾸 우긴다고. 그러니 작업물의 크기를 바꿔줄 수는 없느냐고. 결국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해버렸다. 그리고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 마음대로 A3 사이즈로 작업을 하는 것이냐고. 시화전 편집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다른 사람 말은 듣지 말라고. 나는 결국 세분이 의견을 일치 보고 알려달라고 그 전까지 작업은 안 하겠다고 통보했다. 얼마 후 회장에게서 B4 사이즈로 진행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부회장과 편집장도 크기에 동의했다는 말도 함께였다. 나는 이 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한 달 동안 휘둘렸어야 했다. 한 달간의 휘둘림이 지나간 후,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모든 대한민국의 70대가 다 저렇게 무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보니 매우 무례한 이들과 엮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20대와 70대 사이에 끼여서 매우 피곤한 대한민국의 40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