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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속도    
글쓴이 : 곽지원    24-07-29 10:13    조회 : 3,090

인생의 속도

곽지원

 

  내가 한때 직밴’ (직장인 밴드) 드러머였고, 공연도 여러 번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이면 드럼이었나요?” 대부분 기타 아니면 보컬에 관심을 보이는 세상에서, 왜 드럼에 눈길이 갔는지 모르겠다. 배운 악기는 피아노밖에 없는데, 그냥 드럼의 비트가 어느 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박치라는 사실을, 드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양손과 양발을 동시에 혹은 엇박자로 움직여야 하는 악기. 한 곡을 연주하는 동안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잘 유지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고, 같은 템포를 끝까지 지키는 게 그렇게 어려울 줄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에는 음악 학원에서 일대일 레슨만 받았다. 40대 중반에 새로운 악기를 배우면서, 단순히 드럼을 오래오래 하고 싶은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었다. 그런데 연습실에서 MR을 틀어 놓고 레슨을 받거나 혼자서 연습하는 것으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레슨을 받은 후에는 같이 연주할 직밴을 찾아 나섰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합주실로 찾아가서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나를 받아 주는 데가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밴드는 오히려 오디션을 하지 않았고 면접만 보았다.

 매주 홍대 앞 연습실에 모여서 리드 기타리스트의 자작곡을 비롯해서, , 윤도현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 그리고 메탈리카 등의 록 음악을 몇 시간씩 연습했다. 몇 달 후부터는 홍대, 합정, 강남의 클럽들, 양평의 야외공연장 등 여러 형태의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대 공포증도 서서히 극복하고, 단순히 악보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에 몰입하여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는 드럼을 배우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다.

또래들이 모인 밴드여서 연습을 하지 않는 날에도 함께 식사하고, 결성 2주년 축하파티까지 할 만큼 우리는 돈독했다. 아니, 돈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든 밴드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나 역시 직접 겪어야만 했다. 창단 멤버였던 보컬이 나가는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했고, 몇 달 후 결국 나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대로 직밴 생활을 마감하기는 아쉬웠다. 드러머를 구한다는 공고를 훑어보다가, 블루스 음악을 하는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음악 전공자와 밴드 경력이 많은 멤버들 덕분에, 음악에 대한 지식도 늘어났다. 하드록보다는 소프트한 음악을 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도 훨씬 적었다.   

그 와중에 이사를 가면서 정들었던 음악 학원과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블루스 음악을 채보

(음악을 듣고 악보로 옮겨 적는 것)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드럼 선

생님을 따로 찾아가서 조언을 얻는 등 열성적으로 임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여러 연습실을 수소문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정기적인 연습과 레슨 없이 합주하고 공연을 계속하기에는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멤버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171020일 분당 에릭스 펍 (Eric’s Pub) 공연을 끝으로 직밴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드럼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스틱 여러 개와 악보들을 친구에게 다 넘겼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맛본 손맛이랄까, 무대에서 처음 느껴보는 희열을 경험했기에 후회는 없다.

 

 아직도 음악을 들을 때는 드럼 소리가 먼저 귀에 꽂힌다. 연습하고 공연했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면, 이 박치의 마음은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 있다. 심장소리와 비슷한 드럼 비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끝난다.

  영화 위플래쉬” (2015)에서 주인공은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아니 피가 난 후로도 계속 연습을 한다. 그 영화를 최근에 다시 봤는데, 몇 년 만에 다시 보기까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가학적인 교수의 만행을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고통을 이겨내며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그 교수가 내뱉은 수많은 명언(?) 중 가장 명료하게 남은 것은, “(네 연주가) 빨랐니, 아니면 느렸니?” (Were you rushing or were you dragging?) . 나 같은 박치 드러머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당신 인생의 속도는 어떤 가요? 빠릅니까, 아니면 느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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