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의 미소
곽지원
코로나19 훨씬 전 회사에서 집합교육을 받을 때, 한 여자 강사가 했던 말 가운데 딱 하나가 뇌리에 박혔다.
“미스 리~~~하면서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으세요. 이걸
매일 연습하시면, 인상도 달라집니다.”
회사 동료들과 표정 연습을 하면서도, 말처럼 쉽지 않다고 느꼈다. 요즘도 가끔 그녀의 말이 떠오를 때면, 버스나 지하철의 유리를 거울삼아
‘미스 리~’를 연습한다.
얼굴 근육은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는다.
작년부터 고등학교 동문회 활동의 하나로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한
학년 위 선배와 함께 기획하고 대본 쓰고, 출연까지 한다.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위에서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둘이 죽이 맞아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며 사서 고생하고 있다. 띄엄띄엄 구독자 수가 늘어날 때, 일부 영상의 조회 수가 1만 회가 넘어갈 때 희열을 느끼며….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아이디어를 짜고 대본을 쓰는 일은 무척 즐겁고 신난다.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그런데 직접 출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헤어, 메이크업도 계속 수정해야 하니, 헤어 롤은 물론이고 온갖 화장도구를
가지고 간다. 의상이 가장 큰 문제다. 영상에 상체만 나오기는
해도, 이제 열 편 이상 촬영하고 나니 옷장에서 고를 옷이 없다. 그래서
최근 촬영 전에는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상의 몇 벌을 구입했다.
“반대편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 (The grass on the other side is always
greener).”는 말이 있다. 예전에 카메라의 반대편에서 온라인 강사의 촬영 현장을
관리, 감독할 때는 몰랐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작은 핸드폰 카메라 화면에 비친 나의 얼굴에 익숙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끝없이 내려오는 다크서클과 싸우며, “즐거운 척”, “하나도
안 힘든 척” 속으로 계속 미스 리를 외친다.
촬영 날이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남편이 묻는다.
“그거 하고 얼마 받아?”
당연히 무보수에 봉사직인 것을 알면서도 놀리는 재미에 그런다.
촬영에 녹초가 되어갈 무렵, 예전에 “방구석
이문화 (Show Me the World)”라는 시리즈에 출연했던 강사에게서 카톡이 왔다.
“팀장님~~~~잘 지내시죠? 안부 차 연락드려요. 아직도 쇼 미 더 월드 찍었던 날들 기억하며 미소 짓곤 합니다! 정말
재밌었는데!!! (저만 재밌었던 게 아니길 바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 너무 좋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녀가 보낸 수많은 이모티 콘은 생략한다)
마치 나를 응원하듯 기막힌 타이밍에 도착한 메시지. 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그녀. 퇴사 소식을 전하자 너무 놀라며 또 예쁜 말로 나를 비행기 태운다. 그렇게 꿀맛 같은 소통으로 재충전하고, 나머지 촬영에 씩씩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미스 리 없이도 미소가
그럴듯하게 배어 나온다. 주고받는 대사와 애드리브 속에 명치에서부터 웃음보가 터진다. 선배 왈, “쟤들은 왜 자기들끼리 저렇게 즐거워, 하는 거 아냐?” 그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웃음도 전염이 된다고 하지 않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라고. 오늘도 카메라 속의 나를 향해 예쁘게 웃어본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주문을 외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