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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캐' 시대    
글쓴이 : 곽지원    24-07-29 10:17    조회 : 3,078

부캐시대

곽지원

 

 처음 이메일 주소 만들 때를 기억하나요? 태어난 연도를 멋모르고 넣었다가 나중에 후회한 적은 없나요?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이메일 주소가 나의 또다른 정체성으로 둔갑할 때, 당황하지는 않았나요?

 

부캐’ ( character)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월드 와이드 웹 (www)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누구나 이메일 주소가 한 두개는 있다. 그렇게 부모가 준 이름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내가 갖고 싶은 아이디를 다른 사람이 이미 차지했음에 절망하며, 아무 숫자나 알파벳을 키보드에 두드린 적은 없는지….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유튜브에서 부캐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캐릭터는 직접 만든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나도 고등학교 선배와 같이 동문회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이름의 끝 자만 따서 워니라고 인사한다. 선배 역시 이름 끝 자인 영이라고 부른다. ‘워니와 영이’. 학창 시절 가졌던 라디오 DJ의 꿈을, 이렇게라도 이루었다. 부캐의 힘이다.

 

 이메일 주소에 해리포터 덕후라고 티 내는 ‘harrymaniac’이나 영어 이름인 ‘Fely’만 넣다가, 몇 년 전 블로그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부캐 이름을 지었다.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Fely와 같은 앞 글자로 시작하는 형용사 ‘Fabulous’ (기막히게 좋은, 멋진)를 생각해 냈다. 영어 공부할 때 본인 이름 앞 글자와 같이 시작하는 형용사로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를 묘사하는 활동이 있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50대가 좋다는 의미로 숫자 50을 붙이니 ‘Fabulous50’이 되었다.

 이름대로 산다고 하지 않나. 기막힐 만큼 멋지게 살고 싶어 그렇게 지으니 기분도 좋고, 그렇게 살아질 것만 같다. 부캐의 힘이다.

 

 최근에 이메일 주소를 하나 더 파면서 ‘happy gangster’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행복한 갱스터’, 그 의미는 행복하게 갱년기를 보내는 사람이다. 한국어 갱년기와 영어 갱스터의 앞 글자가 같아서, 언어유희를 해보았다.

 갱년기를 겪고 있거나 지나온 사람이라면 안다. ‘갱년기행복은 거의 반대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갱년기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성격이 바뀌는 사람도 있고 사춘기도 이기는 게 갱년기라고 하니, 어디 감히 행복과 나란히 오겠나.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갱년기다. 그러니까 더더욱 갱년기를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나중에 책을 낸다면 필명으로 쓰려고 만든 이름이다. 익명성이 주는 유혹이다. 일부 글에 등장하고 묘사된 사람들이, 작가가 나라는 걸 모르길 바랐다. 필명 뒤에 숨어서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본명을 쓰기로 마음이 바뀐 후에도, 해피 갱스터의 어감이나 뜻은 버리기 아까웠다. 이메일 주소로라도 새로운 부캐를 살려두고 싶었다.

 

쉘 실버스타인이 쓴 동화 ‘The Missing Piece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를 좋아해서, 예전에 영어 유치원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무대에 올릴 영어 연극 대본을 이 스토리로 만든 적이 있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방랑하는 이야기인데,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한 조각이 끼워 맞춰져야 온전한 동그라미가 된다. 그 여정은 외롭지만 아름답다. 누구나 자아를 찾는 여정을 해본 적이 있으리라. 수많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잘 하는지 알지 못해 방황한다. 그 여정이 청년기에 끝나면 나름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끝내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살다가 간다.

 

 부캐는 학창 시절에 못 해본 모험을 가능케 한다.

 부캐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꽁꽁 숨겨둔 꿈을 실현해 준다.

 부캐는 어쩌면 라는 사람을 제대로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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