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김 정 호
누군가는 말했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 것’ 이라고.
결혼한 아들네에 조그만 근심거리가 생겨 손자 놈도 봐 줄 겸 일 주일에 두어 번 아들집에 다니러 가고 있다.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아들집을 나서게 된다. 천천히 걸어도 5분 정도의 거리인 전철역이라, 혼자 가도 되니 따라 나올 것 없다고 해도 아들은 한사코 전철역까지 배웅을 나선다. 걸어가며 아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들도 어느덧 40초반의 나이가 되고 나도 나날이 늙어가니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애틋한가.
전철역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나는 이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고 아들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에스컬레이터 몇 계단을 내려 가다말고 문득 뒤돌아보면 아들은 아직도 그 곳에 서있다. 나는 아들을, 아들은 나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것일까? 난 어서 들어가라고 다시 손짓을 하고 아들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또 손을 흔든다. 에스컬레이터가 승강장 안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 서로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우리는 몇 차례나 이렇게 반복을 한다. 근래의 근심거리로 힘든 아들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살짝 적셔진다.
늘 엄마의 배웅을 받아오던 아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학창시절엔 방학이 되면 항상 고향집으로 가곤 했다. 할머니 옆에서 실컷 어리광도 부리고 어릴 적 먹던 고향의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호사를 누리곤 했다. 그렇게 한 일 주일을 잘 먹고 잘 놀다 서울로 돌아오게 되는 날은, 왜 벌써 가려 하냐는 할머니의 원망에 눈치를 보며 달래드려야 했다. 고향집을 나설 때면 다리와 허리가 몹시 불편하셨던 할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대문 앞에 와 서 계신다. 내 모습이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그대로 서 계시곤 하셨다. 또 언제 다시 손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묻은 할머니의 표정을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결혼 후, 친정을 다니러 갔다 돌아올 때도 역시 그랬다. 친정엄마는 무거운 내 짐 가방을 굳이 들어주시며 먼 길목까지 배웅을 나오시곤 했다. 엄마는 내 모습이 안 보일 때 까지 서 계시고, 나는 엄마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뒤돌아보기와 손 흔들기를 몇 번이나 하곤 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친정엄마의 모습과 눈길이 아직도 아련히 느껴져 눈시울이 뜨겁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 볼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그리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품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눈길조차 놓고 싶지 않은 자식, 언젠가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 애끓게 그리울 것 같은 부모, 잠 못 이루게 하는 사랑하는 연인, 영혼의 짝인 양 늘 붙어 다녀야 했던 친구 등등.
그들의 뒷모습을 오늘도 나는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 서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