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백
김 경숙
어릴 적부터 대문과 담장으로 가로막혀 밖이 보이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틈만 나면 2층 옥상으로 올라가곤 했다. 지금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앞이 탁 트인 한강 변에 담장보다 키가 큰 5층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6개 동 규모의 소형 아파트 단지다.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라 자가 거주자보다 세입자가 더 많다. 300세대 미만이라 관리사무소나 관리실이 따로 없다. 각 동 입주민 중 한 명이 소정의 수고비를 받고 공과금 및 관리 업무를 맡는다.
그러던 중 문제가 터졌다. 우리 2동 관리를 맡았던 세입자가 관리비를 횡령한 것이다. 수도세와 전기세를 합쳐 약 800만 원이 미납된 상태였다. 수도국으로부터 단수 예고를 받자 작은 동이 발칵 뒤집혔다. 20년 넘게 거주한 나에게 동대표가 도움을 요청해 왔다. 주민 세 명이 역할을 분담했다. 우리는 횡령자에게 상환을 독촉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계속 거짓말로 시간을 끌었다. 연락도 잘되지 않더니, 결국 명도소송으로 쫓겨났다. 이후 미납 금액을 소유주들에게 분담 요청하고, 수도국에는 분할 납부를 요청하여 수개월에 걸쳐 문제를 해결했다.
연체가 정리되었지만, 입주민 중 새로운 관리인 지원자가 없었다. 관리인이 없는 공백기를 모두 난감해했다. 마침, 나도 뭔가 할 일을 찾고 있었기에 관리 업무를 맡기로 했다. 그러나 일이 순탄치 않았다. 횡령자를 고소하지 않고 그냥 이사 가게 뒀다고 공격하는 이, 관리인이 하는 일이 뭐 있냐고 다그치는 사람, 관리비를 제대로 내지 않겠다고 항의하는 이들과 매달 충돌했다. 상식을 벗어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과 상대할 때는 그의 인격은 보이지 않고 어떤 벽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며칠 전, 늦잠을 자고 있는데 수도국에서 전화가 왔다. 이달 수도량이 평소보다 50% 이상 증가했으니 누수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단체카톡방에 공지를 올리고 미 검침 세대와 카톡방에 없는 세대에는 일일이 연락했다. 그러던 중 특정 라인에서 물소리가 난다는 제보와 그중 한세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 라인의 세입자와 방문 약속을 잡았다.
1층에 거주하는 연세 많은 할머니 아들이 먼저 연락이 왔다. 그 집은 지난달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물을 쓸 일이 없다고 하여 미 검침 세대로 남아있던 곳이다. 문을 여는 순간 심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할머니가 반려견과 함께 생활했던 것 같았다. ‘아들이 오늘 강아지 밥을 주러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 변을 발라놓은 상황을 보니, 강아지가 갑자기 혼자 있게 되면서 분리불안장애가 온 것 같았다. 생각이 정리되자 ‘쉐엑~’하는 세찬 물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렸다. 그런데 겉으로는 집안 어디에도 물 샌 흔적이 없었다. 아들은 보름 전부터 소리를 들었지만, 어머니와 복잡한 일로 정신이 없어 신경을 못 썼다고 했다. 사정이 그렇다 해도 직업이 인테리어 업자인데 수도가 새고 있다는 것을 인지 못 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메인 잠금장치를 잠그자 시끄럽게 울어대던 소리가 금세 사라졌다. 문제 원인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화장실 바닥 아래 묻힌 배관이 노후화로 어딘가 터진 것 같았다. 검침 숫자를 지난번과 비교해 보니 1000톤 이상이 누수되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갔다. 한 달 정도 누수된 수도세가 100만원이 훨씬 넘게 나오게 될 것이다. 이 1000톤의 물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땅속 보이지 않는 공간에 의심을 두며 지반이 살짝 걱정되었다.
옆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 아들의 덩치가 새삼 더 크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패혈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는데, 지금은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한 달 병원비만도 천만 원이 넘게 나오는데, 안 좋은 일은 왜 자꾸 이어서 생기는지….” 이 상황에 할머니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비보험 안 들었냐는 말을 위로랍시고 내뱉었다. 양변기에서 샌 물만 아니면 공사 영수증 첨부해서 감면을 받을 수 있다는 수도사업소의 안내를 전달했다. 이달 고지서가 나오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문제는 아들이 집수리에 대해 집주인과 상의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나 또한, 논리적이지 않고 예의가 없는 이 집 주인과 충돌이 우려스러웠다. 날씨가 쌀쌀해져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서일까. 수돗물이 새어 나가듯 쓸쓸함이 내 마음에 깔리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1층 집주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상황을 잘 모르는 것처럼 시침을 떼고 질문을 시작하더니, 본인 집 문제가 아니면 모든 비용을 관리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반협박을 해댔다. 하지만 설비업자를 불러 확인한 결과, 화장실 배관 연결부 누수로 판명되면서 집주인은 조용해졌다.
할머니 아들은 급하게 왔는지 옷에 톱밥과 잔 먼지가 묻어있었다. 강아지 배설물 치우고,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 상황에 나도 모르게 동일시되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득 나도 언젠가 할머니처럼 중환자실에서 누워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그때는 버티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모든 생성된 것은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한 생애를 살아간다. 아파트도 지을 땐 신축이라 불리지만, 20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구축이라 불린다. 땅속에 묻힌 배관도 새것일 때는 존재감이 없지만, 결국 낡고 터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젊음이 지나가고 어느 날 문득 백발과 통증이 찾아오게 된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태어난 순간부터 사라짐을 향해간다는 것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인간에게는 ‘노후’라는 여백의 시간이 남는다. 1층 할머니가 두 달 동안이나 퇴원하지 못하는 것은 병이 깊어서 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살고 싶다는 미련이 생의 남은 여백에 가득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땐 남보다 더 잘 살려고, 더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렇게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요양원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2023년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약 83.5세다(남성 80.6세, 여성 86.4세). 특별한 직업 외에는 직장 정년은 대부분 60세다. 그렇게 은퇴 후 죽기 전까지 노년의 약 20년이 여백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 여백을 지금은 관리인으로, 또 그다음은 무엇으로 채워 나갈까? 막상 내가 그 할머니 입장이 된다면, 과연 삶에 대한 미련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친구는 말이 없었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