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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주름    
글쓴이 : 김기양    25-12-23 07:00    조회 : 1,930

시간의 주름

 

김기양


대학  2학년 때였다. 산에  미친 듯이  다니던  나는 설악산 종주를  계획했다. 백담사에서 시작해서  대청봉을  지나  설악동에  도착하는  코스를  서북주 능선이라 하는데  그  길을  다  걷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에  대승폭포에서  치고 올라가기로  했다. 흔히  무박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오색약수터를  시작으로  대청을  올라가는데  그것보다는 더  긴 길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  대승폭포는  물이  많아서  그곳에서  일박을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되면 그  다음날  대청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다. 그때는  투명한 자바라  물통이  있었는데  우리는  두개의 물통을  가지고  능선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넷이서  번갈아  가며  거의  3시간을  물통을  들고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당시  자몽이라는 과일을  처음  봤는데  한 친구의  배낭에  자몽을 가득  채웠다. 올라가며  자몽을  까서  먹었는데  진짜  꿀맛이었다. 내일은 물이  없는  긴 길을  걸어야 하니  물은  생명수였다. 저녁 어스름할 때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했다. 자려고  누우니  야생동물이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남자가  셋이었는데  물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여기는 물이 없다. 이쪽으로는  2시간  저쪽으로는  4시간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내일 아침  내려가라고  말해주었다. 당장  마실물이  없다 하니  우리의 물을  나눠주었다. 다음날  아침,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물이  있느냐고  물어서  오늘  저녁  6시는  되어야  물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군대에서  제대한 사람,  산을 조금 다닌 사람,  그리고  산이 처음인 사람  셋이 하는 말이  여자들이  6시면  자기들은  1시면  도착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저녁도  아침도  못 먹었을 텐데  무쇠도  아니고 , 알아서 하라고 했다.  


 길고 지루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서북주  능선은  굴곡없이  평평한 길이라  저 멀리에서도 사람이  다  보인다. 아마도  초보인 듯한  사람이  결국  주저 앉은  모양이다.  움직이지 않고  있다. 둘은 열심히 걸어서  따라오고 있기는 한데  우리가  라면  먹는 걸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니  좀  불쌍해 보이기는 했다.  결국  한 사람도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산을 조금  다녔다는 그는  뒤처지지 않게  따라왔다.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어보니 생감자를  깎아 먹었단다. 내려가라고 할 때  내려가지 … 서북주 능선에는  우리나라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귀때기청봉이 있는데  높이가  거의  100미터에  이른다.  그가  물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기에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땅바닥에  털석  주저앉더니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를  남겨놓고  봉우리를  넘어가려다  그래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여자라서, 여자가 이런 말에  예민한  나이다 보니  그다지  곱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시  돌아갔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물이  있을 수도 있다.  여름이라  비가  많이 와서  있을 것이다. 그러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려가느냐며  울었다. 우는 그를  두고  우리는  봉우리를  넘었다. 오색약수에서 무박으로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서인지 그들이  걱정되어서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잠을  뒤척이며  아침을  맞았다.


 짐을  챙겨  대청에 오르니  사람들이  많다. 다시는  초코파이는 먹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3박 4일동안  먹었더니  이제는  도저히  못 먹을 거 같다고 한다. 무모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대청을  지나면  천불동  계곡이다.  그곳을  내려가면 설악산 케이블카가 있는  광장이  나온다. 내려가려고  일어서다 보니  그들이  왔다. 눈에서  빛이 난다.  죽다 살아왔으니  그러한가 보다. 배낭 양쪽에는  1.5리터  페트병  두개에  물을 가득 채워  매달았다. 그리고  품에도  물병이  하나씩 있다. 웃음이 마구 났다. 앞으로는  계곡이라  물이  가득있는데  말이다. 물어보니  어느 대학 산악회를  만나  같이  물을  구하러  내려갔다고 한다.  물을 가지고 다시  친구들을  데리러 가서 다시  돌아왔다고.  그래도 남자라서  그런지  정말  빨리  대청에  도착했다. 산에  다니는 여자들이랑은 다시는 말도 하지 않을 거란다. 설악동에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와서  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다들  우리가  냉정하고  그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은  참으로 힘이 세다. 우리를  구름 위에서  걷게 하기도 하고  또 깊은 터널에서  기어가게 하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다시 잠에 들었을 뿐인데  나를  키운다. 오뉴월 뙤약빛이  무섭고  밥 한숟가락이 어디냐는 속담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20대에는 그냥  분했다.  내려가라고 했고  또  물이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귀한 물도  주었다. 우리가 무얼 잘못했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30대가 되고선   알았다.  그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걸 . 더운 여름날  물없이  하루가 지났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40대가 되었을 때  그들이  진짜  목이 마르고 고통속에  있었으리라 느껴졌다. 50대가  되어서는  그들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커다란 짐을 지고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은 그들이지만 보는 것은  ‘나’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나를 보는 일은 놀랍다. 시간은  쳇바퀴 돌듯 우리를  돌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60대가  되어 다시  이 일을 떠올린다면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즐거운일이다. 참, 집에 와서  다시 자몽을  먹었는데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쓰다. 그때는  그렇게나  달콤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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