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김기양
TV드라마 1984에서 평상은 정겨움의 상징이다. 여러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기분좋은 추억이 가득 펼쳐진 공간인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평상은 지루함과 체념이 합쳐진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무덤 같은 곳이다.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그때는 국만학교였다. 2학년이나 3학년쯤 되었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면 골목길 끝에 아줌마들이 평상에 앉아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그 곳에는 빛이 없었다. 표정없는 엄마들이 아이들이 하나 둘 돌아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다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그 평상을 보며 두려웠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그 골목길의 평상은 나에게 이게 너의 미래라고 소리치는 듯해서 늘 피해다녔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나는 잘 노는 어른이 되어서 평상에서 노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멋진 직업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리라 생각했다면 이해가 되는데 잘 노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다니 공부가 진짜로 하기 싫었나 보다. 내가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대성통곡을 하는 거다. 물어보니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단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다. 열심히 놀아보자고. (내가 아이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잘 노는 일은 이 세상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놀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논다는 일이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을 잘 유지하고 자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노는 일이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으면 자신을 볼 수 없다. 그저 무심히 놀아야 한다.
지금도 평상은 존재한다. 이름과 모양은 달라졌으나 그때의 지루함과 체념이 합쳐진 시간의 무덤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있다. 이렇게 문화센터도 많고, 배울 일도, 갈 데도 많은 지금도 집에서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일주일은 진짜 바쁘다. 잘 노는 일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놀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하루종일 놀면서 뭐가 힘드냐며 핀잔을 준다. 노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사실 놀다보면 즐거워서 힘이 드는지 잊어버린다. 그러면 체력도 길러진다. 나랑 노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튼튼해져간다. 게다가 좀 통통해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54년생 친구가 있는데 맨처음 만났을때는 75세까지만 놀아달라고 하셨다. 6개월쯤 지났을때 아무래도 80까지는 놀 수 있을 듯하다며 좋아하셨다. 놀면서 체력이 붙으신 거다. 요즘은 부모님이 장수하셔셔 본인도 90까지 버틸지도 모른다며 헬스를 등록하셨다. 잘 걸어야 놀 수 있다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계시다. 내가 글쓰기를 배우겠다고 하니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지금은 나의 글을 읽으며 이야기도 해주시고 즐거워하신다. 10년 전에 만났으면 자신의 삶도 달라졌을까? 라며 속상해 하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고 . 시간은 길이보다 무게가 진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