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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글쓴이 : 권순예    25-12-29 09:27    조회 : 1,453

작년 가을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사 계획이 있어 그날부터 방 한가운데에 여행 가방을 펼쳐놓고 짐을 꼼꼼히 채워 나갔다. 예전에 쓰던 삼각대는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리고 새로 산 경험이 있어 고민이 되었다. 이번에는 잃어버려도 부담이 가지 않는 헌것을 가져갈까, 아니면 새것을 가져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헌 삼각대는 다리 하나가 흔들거려 불편했고, 새 삼각대는 안정감은 있지만 무거웠다. 고심 끝에 무게를? 줄일 겸, 헌 삼각대를 가져가기로 했다.

드디어 출국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어질러놓은 방으로 남편이 들어와 짐은 잘 챙겼어? 여권이랑 돈, 스마트폰도?” 라면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무거운 가방을 들어 체중계에 올려 무게도 확인해 주었다. 카메라 가방을 들어보며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니 어깨가 아프지!” 하며 나에게 당신은 잃어버리고 와도 괜찮은데, 여권이랑 스마트폰은 잘 챙겨 와야 해,”라며 농담 섞인 인사를 했다.

집 청소를 하고 좀 쉬려는데 새 삼각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그, 바보야! 새 삼각대를 샀으면 새 걸 써야지!” 내게 쓰던 것은 그만 버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방을 풀어 헌 삼각대를 버리고 새것으로 바꿔 넣었다. 

저녁 5시 무렵,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도착했다. 파티마 성당이 숙소와 담 하나를 두고 있을 만큼 가까웠다. 일몰을 찍으려 했지만, 날씨가 여의치 않아 내일 일출을 찍기로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성지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모처럼 먼 이곳에 왔으니 이곳 성지에서 꼭 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에서의 첫 미사는 보통 새벽 6시에 있는데, 파티마 성당도 6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보이지 않으면 미사 보러 간 줄 알라,”고 일행에게 미리 말도 해 놓았다. 

파티마 성당 광장은 넓고 길었다. 성당 문이 열려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지런히 걸었다. ! 육중한 성당 문이 열려 있었다. 성당 안은 웅장했고 현지인들이 미사드리려고 모였다. 시계를 보니 65분 전이었다. 파티마 성당 미사도 한국 미사 시간과 같아 감동했다.

나는 가운데 통로 왼쪽 맨 앞줄 옆에 삼각대를 놓고 앉았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미사 장면을 몇 장 찍었다. 미사가 끝나자 모두 나가고 나는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싶어서 혼자 남았다. 잠시 후 직원이 들어와 제대 정리를 하고 있었고 여행 단톡방에서는 빨리 오라고 연실 카톡 소리가 울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빛도 찍어야 하고. 일행과 아침 식사도 하러 가야 하고, 730분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가방을 차에 싣는데 친구의 삼각대가 보였다. 순간, 성당에 두고 온 삼각대가 생각이 났다. 아차, 삼각대를 놓고 왔구나. 나는 성당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이른 아침이라 내가 놓고 온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야, 중얼거리며 달렸다. 성당 안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도 삼각대는 없었다. ! 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가 가져갔을까. 제대를 정리하던 직원이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물건도 땅에 놓는 순간, 내 물건이 아니다. 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미리 했었는데, 결국 삼각대를 파티마 성당에 두고 오고 말았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삼각대에 번호라도 새겨두었더라면 직원이 전화라도 해 주지 않았을까, 제의 방문을 두드려 직원이 나오면 손짓 몸짓을 해서라도 찾지 않았을까. 30분의 시간 여유만 있어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국 신부 수녀님도 파티마 성당에 파견해 계시다던데, 귀국하고도 그 직원의 모습은 잊히지 않았다. 혹시 가톨릭 여행사는 파티마 직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행사를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며 삼각대 설명도 해봤다. 찾으면 사례하겠다고도 했는데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쉽게 포기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 멀리 있는 삼각대는 왜 잊지 못하는 걸까.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파티마 성당에 다녀왔는데 삼각대를 봉헌하고 왔다고 했다. 친구는 ?” “뭣 때문에 삼각대를 봉헌해?” 하느님께서도 사진 찍어 보시라고 농담을 진실로 받아주는 친구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깔깔 웃으며 파티마 성당에 두고 온 삼각대 사연을 얘기했다.

그 친구는 "내가 아팠을 때 기도해 주시던 수녀님이 파티마 성당에 계셔, "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후, 친구는 파티마 성당에 계시는 수녀님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희망이 보였다. 삼각대 사진과 미사 장면, 마지막에 찍힌 직원의 모습, 미사 날짜와 시간을 보내드렸더니, `! 이라며 그 먼 그곳에서 문자를 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사진을 보낸 뒤 얼마 있자, 친구는 삼각대 사진과 수녀님 발등이 찍힌 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감동하여 눈물이 났다. 그 후, 나를 애태우던 삼각대는 그 멀고 먼 포르투갈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내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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