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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예    25-12-29 09:32    조회 : 1,449

달이 밝은 여름밤 마루 끝에 누워 고개를 늘어뜨리면 보였던, 초가지붕 하얀 박꽃은 지금도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아있다. 초저녁이 되면 나는 얼른 아버지가 만든 왕골자리를 폈다. 밥상이 차려지고 온 식구가 모여 맛있게 밥을 먹고 나면, 밥상이 치워지고 모기장을 쳤다. 아버지가 모깃불을 피우면, 우리는 왕골자리에 누워 쏟아져 내리는 금광석을 품에 안았다. 그러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서로 내 것이라고 우기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가 만든 왕골자리는 볏짚 위에 왕골을 씌워 투박스럽긴 해도 푹신한 촉감이 요술을 부렸다. 비 오는 날은 더 뽀송뽀송해져 오랫동안 누워서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고, 푹푹 찔 때는 저만큼 떨어져 나가 앉아있음에도 시원하게 품어주었다. 

나는 3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비어있는 친정집을 다녔다. 이방 저 방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뜰 팡 밑에 개미집들을 쓸어내고, 윤기 잃은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3개의 부뚜막에 펄펄 물이 끓어 넘칠 때까지 불을 땠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왕골자리를 만드셨다. 나는 사랑방에 들어가 따스한 온기가 올라오는 방바닥에 왕골자리를 폈다. 하나는 색이 누렇게 변해 볼품이 없고, 하나 는 거의 새것 같다. 나는 누렇게 변한 왕골자리 위에 누워 손바닥으로 자리를 쓸어내곤 했다. 여름이 지나면 그늘에 바람을 쐬어주고, 다시 돌돌 말아 꽁꽁 묶어놓았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새것만 가지고 집에 왔다.


주룩주룩 빗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달그락달그락 아버지의 왕 골 자리 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는 왕 골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논 한 귀퉁이에 왕 골을 심고, 노끈을 만들기 위해 칡넝쿨을 끊어다 소죽 쑬 때 칡넝쿨을 삶아 속대는 빼내고 겉껍질을 벗겨 내고 하얀 속살을 말려 실처럼 잘게 찢어 엄지와 검지로 노끈을 만드셨다. 일거리 없는 겨울에는 사랑방에 자리 매는 틀을 놓고 여러 개의 쇳덩이에 만든 노끈을 감아 자리 만들 준비를 하셨다. 

아버지 자리 매는 소리를 들으며, 배를 쭉 깔고 숙제하다 잠이 들곤 했다. 자는 나를 반듯이 뉘어 주시며 머리를 들어 살포시 베개를 넣어 주시고 위 저고리를 벗어 덮어 주시던 아버지, 시집살이 힘들어 찾아간 친정에 아버지를 등지고 자리위에 누워버린 나를 보고여식 잘못 키우면 남의 집 망해 먹고, 아들자식 잘못 키우면 내 집 망해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며 어깨를 살포시 잡아 주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떨렸던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의 마음을그때는 몰랐다.’ 결혼식 날 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시어른께 잘하고 남편한테 잘하고 잘 살아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때 아버지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처음 보았다.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며 왕골자리를 넣어두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이 닦아 그늘에 바람을 쐬었다. 신문지를 자리 사이에 끼워 돌돌 말아 예쁘게 묶어 장롱 옆에 세워 두었다가 다시 쓰기를 40년째 하고 있다. 

너 시집가던 날 아버지가 춘천에서 천안 집까지 오시는 동안 어찌나 차 안에서 우시던지 우리 다 같이 울면서 왔어.” 

지금도 친척들이 모여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 말은 장롱 옆에 세워져 있는 왕골자리와 함께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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