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친구와 고봉산을 오르다 노란 솔잎을 보니 문득 불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 넓은 바위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다 눈이 더 내리기 시작해 서둘러 내려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려다, 텅 빈 놀이터 그네에 앉아 나무 가지 사이로 조용히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화롯불을 떠올렸다. 이렇게 밤새 눈이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 아침에는 아버지와 함께할 일들이 많아질 것 같은 마음이 스치며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내려 앉았다.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는 엄마가 어제저녁 물을 가득 채워 놓은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을 가득 넣고 불부터 피우셨다. 마른 솔잎을 조금씩 넣으며 풍구를 돌려주면 금세 장작이 활활 타오른다. 아버지는 솥뚜껑을 열지 않고도 솥에 손을 대보며 물의 온도를 확인한다. 아궁이의 장작이 잘 타고 있으면 아버지는 작은 양재기를 들고 뒤란(집뒤의 올안)으로 가 막걸리 한 양재기 떠다 솥 물 위에 띄워 새끼손가락의로 휘저어 따스해진 막걸리로 해장하셨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드시고는 졸졸 따라다니는 나에게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한 모금 정도 남겨 주시곤 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로부터 술을 배웠다.
엄마는 아버지가 데워 논 가마솥 물로 아침밥을 지으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부엌에서 쓰고 남은 장작을 사랑방 아궁이로 옮겨 소죽을 데우고 화로불이 된 장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은 금세 훈훈해졌고, 아버지는 우리 5남매 내의를 벗겨 밖에 내다 걸고, 우리를 이불속으로 밀어 넣고는 화롯불 조심하라며 당부하시곤 나가셨다. 우리는 발가벗은 체 이불 속에서 낄낄대며 장난을 치곤 했다.
아버지는 이내 소의 밥을 먹이고, 밖에 걸어 놨던 내의를 거둬 화롯불에 쬐면 추위에 웅크렸던 이들이 화롯불로 떨어져 타닥타닥 이 타는 소리가 났다. 그때는 이들이 많았다. 자주 씻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었을까. 나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이가 많았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린 아침에는 아버지가 따스한 물을 대야에 가득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순서대로 딸 넷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막내는 새로 물을 가져다 씻어주었다. 그 사이 화롯불 위에는 청국장 뚝배기가 올려지고, 보골보골 소리가 나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재잘거리며 엄마의 밥상을 기다렸다.
화로에 고구마를 묻어 놓고 나가 놀다 오면 누가 먹었는지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검은 숫 덩이만 있었다. 아버지가 외출하고 안 계시면 엄마는 양푼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찬밥과 노란 들기름을 넣어 화롯불에 올려 김이 올라오면 주걱으로 썩썩 비벼 주시곤 했다.
한번은 실컷 잘 먹고도 양푼에 달라붙은 누릉지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언니를 막느라 수저로 언니 머리통을 때렸다. 나는 엄마에게 혼꾸멍 나고 맛있는 누렁지는 언니 몫이 되었다. 화딱지가 난 나는 사촌오빠 따라 썰매 타러 나갔는데 그날따라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오빠 등에 업혀 가자 엄마는 계집애가 머슴아가 되려나 하며 등짝을 후려치셨다. 그때도 아버지는 아무 소리 없이 바지며 양발이며 화롯불에 말리고, 운동화는 불 땐 아궁이에 말려 주셨다.
아버지가 화롯불에 늘 쬐어준 옷을 입었을 때의 그 온기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눈이 내리면 나는 자꾸 불을 피우고 싶다. 장작 타는 소리와 막걸리 냄새, 솥뚜껑에 손을 얹어 보던 아버지의 굳은 손등이 빛 속에서 함께 떠오른다. 아버지는 이미 내 곁에 없지만, 그분이 지펴 놓은 불은 아직 내 안에서 꺼지지 않았다. 내가 사람 곁을 오래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을 데워주고 싶어지는 이유도 어쩌면 그 불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 화롯불에 아버지가 남겨 준 온기를 얹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