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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족벌    
글쓴이 : 류문수    14-04-06 10:22    조회 : 6,792
   세족벌.hwp (36.0K) [1] DATE : 2014-04-06 10:22:18
                                세족벌(洗足罰)
                                                                                        류 문 수
 
 
  L선생이 담임하는 1학년 1반은 모범 학급이다. 언제 보아도 정숙하고 깨끗하며 정돈되어 있다. 또한 학교장이 우수 학급에 주는 상은 모두 독차지 하곤 했다. 학업우수, 환경미화, 합창대회, 매스게임 우승 등... 타 학급이 어느 분야도 흉내 내지 못한다. 그러자 L선생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시기심도 점점 더해 가게 되었다. 선생은 본교로 전근 온 지 한 학기를 겨우 넘겼다. 그래선지 기존 교사들의 텃세 심리가 L을 더욱 거친 구설수로 몰아넣곤 했다.
  월요 애국조회 시간이었다. 학교장 훈화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젊은 여선생들의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교정의 엄숙한 공기를 산산 조각내고 말았다. 교사, 학생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웃음소리 나는 1학년 대열 뒤쪽을 주목하게 되었다. 교장 훈화도 일시 중단되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일변하고 말았다. 교장이 몹시 화가 났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의외로 하는 말씀이 "어제 일요일, 여선생님들께서 매우 재미있었던 일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조회 때 들어 보기로 합시다"라며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남은 이야기를 서둘러 끝냈다.
  애국조회를 마치고 입실이 끝났다. 예상 했던 대로 교장실에서 내게 인터폰이 왔다. 아침 조회 때 웃고 떠든 선생님들을 파악해서 함께 교장실로 들어오라는 몹시 흥분된 음성의 호출이었다. 여섯 분의 젊은 여선생님들은 초긴장 상태에서 교장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선생들이 엉거주춤 서있는데 갑자기 "선생들은 학생 교육을 하자는 거요, 망치자는 거요!" 교장이 큰소리로 역정을 냈다.
"교장선생님 죄송합니다. 너무 웃음이 나서...그만" 앞에 섰던 P선생이 말하자  "뭐가 그리 우스워요, 체통 없이" 교장은 더욱 화를 버럭 냈다.
"K선생, 말해 보세요, 뭣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품위 없이 웃고 떠들어 교장 훈화를 중단 시킨 건지"라고 나이 제일 많은 교사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L선생님의 취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L선생 취미가 뭐 길래요?"
"...저 학생들 발 씻어 주는 일이 취미라던데요" 비꼬는 듯 말하니 젊은 여선생들은 "키득 키득" 또 웃어대기 시작 했다.
"발 씻어 주는 취미?" 교장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L선생으로 부터 세족벌(洗足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놀랄 것이 없었다.
  크리스찬인 L선생은 언제나 학생들을 자기 자식 대하듯 사랑으로 지도하였다. 교육활동 모든 분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교사로서의 책무를 빈틈없이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분은 학생 생활지도가 잘되면 학습지도는 저절로 잘된다는 교육신념을 갖고 있었으므로 꾸준히 성실하게 학생 생활지도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기심이 많은 교사들에겐 시기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음악 교과를 가르쳤다. 한번은 3학년 남자 반 성악 실기 시험을 보는 시간에 있었던 학생지도 사례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이미 학습한 지정곡을 번호순대로 학생이 교단에 나와 부르면 교사는 채점을 한다.
 "다음은 37번, 37번! 김홍식 나와 불러."
 "김홍식, 자요." 홍식이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깨워라, 빨리 깨워." 주변 학생들이 깨웠으나, 홍식이는 상관 말라며 계속 잤다. 보다 못한 L선생이 홍식이 자리로 가서 어깨를 두드리며 "어서 일어나 노래 불러라. 실기 시험 보지 않으면 네게 불리하다. 너 대학 안 갈래!" 또 다시 어깨를 선생이 두드리는데 갑자기 "왜 자꾸 귀찮게...!"하며 벌떡 일어서서 선생을 노려보더니 홍식이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생은 무언가 가슴에 솟구치는 느낌을 받으며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으나,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실기 시험을 진행 시켰다. 시간을 끝내고 L선생은 반장에게 홍식이를 불러 오게 했다. 특별지도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식이는 반장에게 거친 욕설만하고 오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L선생은 하루가 지나면 다소 달라지겠지 하고 내일 다시 불러 지도하기로 했다.
  다음날 선생은 직접 홍식이 학급으로 가서 부드러운 말로 홍식이를 불렀다.
 "홍식아, 나하고 조용히 이야기 좀 하자. 김홍식! 상담실로 가자."
 "아이 ××, 왜 자꾸 지랄이지! 나 퇴학 시키면 될 거 아냐"하고 눈을 부라리며 홍식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이젠 반말까지 해댔다. 이 학생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L선생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않히고 홍식이 담임선생을 찾았다. 홍식이는 열외시하는 문제 학생이라고 신경끄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 그래도 포기가 안 되는 L선생은 내일 점심시간에 타이르겠으니 상담실로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다음날 홍식이는 담임선생의 설득으로 상담실로 L선생을 찾아 갔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모습의 홍식을 본 선생은 분노의 격한 감정이 앞섰다. 그는 교사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잠시 눈을 감았다. 한동안 진정을 하고서야 친절하게 홍식을 맞으며 가장 낮은 자세로 그를 지도하기 시작 했다.
  "이 의자에 앉아라, 점심은 먹었니?" "예" 매우 떫은 표정이다.
  "차 한 잔 하자, 커피 어떠냐” “싫어요" 그래도 커피를 한잔 타서 내미니, 겸연쩍어하며 마신다.
  "나도 너 같은 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녀석도 너같이 말썽쟁이다. 부모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니..."라며 아버지가 자식 대하듯 푸근하게 대화를 나누었었다.
  "너 발에서 냄새 나는 것 같다 양말 좀 벗어 봐라" L선생은 홍식이의 양말을 엎드려서 벗기기 시작했다.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그만 놓아요." 홍식이는 양말을 벗지 않으려고 몹시 저항했다. 선생은 힘으로 양말을 벗기고 미리 준비한 물 대야에 학생의 발을 넣었다.
  "내가 너의 부모라고 생각해라. 부모가 자식 더러운 발 못 씻어 주겠니." 홍식이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비비꼰다. "그만 하세요!" "이 더러워진 물 봐라, 가만있어라." 선생이 의자 밑에서 발을 골고루 씻기자, 강심장의 홍식이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몸을 뒤튼다.
  L선생이 담임하는 학급 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벌이 이 세족벌이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모질게 맞을지언정, 세족벌은 결단코 싫다는 것이다. 몹시 두렵게 생각하며 조심한다고 했다. 선생님께 지적당했을 때 대야에 물 떠오라는 말씀만 없으면 한숨 돌리며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의 인자한 발 씻김의 손길은 온 몸을 전율(戰慄)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발 씻김은 학생들의 마음을 압도(壓倒)하는 ‘정신의 벌’이 된 것이다. 어느 학생은 "너 대야에 물 떠오너라."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마음이 오그라들 듯 정신이 없고 선생님이 발을 어루만져 씻을 때는 숨이차고 이마에 땀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씀이 길었는데 무슨 말씀이었는지 기억되는 게 별로 없었다고도 말 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잘못해서 대야에 물 떠오라고 선생이 말하면 무조건 앉아서 울기부터 하며 용서를 청한다고 한다.
  발을 닦이면서 선생님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면구스럽기도 한 학생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50대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생님의 손길이 마음을 조이게 한 것이다. 온 몸을 움츠리게 하였다.
  L선생은 홍식이의 더러운 발을 정성껏 씻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나갔다. 목적 있는 삶을 살자. 너에게도 말 못 할 어려움이 있겠지! 너 자신을 이길 의지를 길러라. 절도 있는 생활이 필요하다. 네가 하고 싶은 즐거운 일을 상상하며 미래를 바라봐라. 한번 밖에 주워지지 않는 너의 소중한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꽃 피워라...등 홍식이에게 바른 인생길을 열기 위해, 작고 친근한 말씨로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홍식이는 L선생의 진실 앞에 유순한 표정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너는 머리도 좋고 건강하니 못할 것이 뭐 있니! 그리고 네 주변에는 너를 사랑하고 아끼는 여러분들이 너를 돕고 있지 않니!" 그에게 용기와 희망과 믿음을 심기 위해 선생은 느긋하게 발을 씻기며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갔다.
이윽고 홍식이는 "선생님 제가 잘못 했어요. 다시는 제멋대로 하지 않을 게요" 홍식이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사내대장부가 이렇게 눈물이 흔하냐! 알았으면 굳게 결심하고 실천하면 되는 거지." 선생은 암흑 속을 헤매다가 밝은 빛을 본 듯 흥분하기 시작 했다.
"너의 집에는 발톱 깎기도 없냐" L선생은 홍식이의 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 양말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 신겼다. "야 홍식아, 이 헌 양말은 네 손으로 빨아 신어 봐라, 어머니께서 홍식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니?"하고 말하며 가방에 넣어 주었다. 홍식이의 변화에 힘을 얻은 L선생은 마지막 정리의 말을 차분히 끝내고 교실에 돌아가도록 했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수십 번 변하며 살게 된다. 집에 가서 창창한 네 앞날을 잘 생각해 보거라, 네가 몇 년 살고 인생을 끝낼 게 아니지 않니?" 홍식이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선생님, 잘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정말 잘 할게요." 작지만 힘 있는 소리로 말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깊은 인사를 하며 상담실을 나갔다.
  L선생은 뭔가 큰일을 해낸 듯 흐뭇하면서도 묘한 승리감을 맛 볼 수 있었다. 이 후 홍식이의 언행이 돌변한 것을 보고 모든 선생들이 놀라워하며 그를 지나칠 적마다 한마디씩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 선생님들의 진심어린 칭찬을 들을 적마다 홍식이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L선생도 이때부터 기존 교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서서히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가고 있는 가톨릭(천주교) 교회에서는 부활 주일 전, 3일간 전례(典禮)를 정점으로 여러 가지 뜻 깊은 예절이 진행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성대하게 큰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3일 간을 성삼일(聖三日)이라 말하는데 그 첫째 날이 성목요일이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체 성사를 제정하신 기념일이다. 이날도 여러 예절이 진행되는데 그 중 세족례(洗足禮)가 포함되어 있다.
  세족례는 예수께서 자선(慈善)과 애덕(愛德)에 필요한 겸손(謙遜)을 가르치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일을 기념하기 위한 예절이다. 각 성당에서는 이날을 기념하여 세족례를 행한다. 신부님이 원로 신자 12분을 선정하여 손수 발을 씻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덕을 일깨운다.
  L선생의 세족벌 착상도 교회 세족례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낮은 자 되어 사랑으로 가르칠 때, 이 사랑의 교훈은 어떤 두터운 벽도 가볍게 허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학교 교육에서 체벌(體罰)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선용되어 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체벌이 자행된 사례도 있어 교사들이 곤란을 겪은 일도 더러 있었다. "사랑할 줄 아는 자는 벌할 줄도 안다"는 프랑스 격언에서 보듯, 사랑할 줄 모르면 벌할 줄도 모르고 잘못된 체벌도 여기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 된다. 학생들의 잘못에 철저하게 벌주고 잘못을 깨닫게 하는 교육체벌, 어떻게 해야 될까? 참으로 어려운 과제 중의 과제 인 것 같다. 요즈음은 어떤 체벌도 금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L선생의 세족벌은 궁여일책(窮餘一策)이 아니라 많은 고민 끝에 이루어진, 제자 사랑의 착안이라 보겠다. 초, 중등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날로 그 어려움이 더해 가고 있다. 교사들은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더불어 나날이 다변화하는 청소년들의 욕구와 생리를 빨리 이해하고 소화하기 힘겹다.
 L교사의 세족벌에서 교사직의 어려움과 깊어가는 교육일선의 고뇌를 보게 된다.

김정미   14-04-08 00:08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
허리춤에 수건을 찔러놓고
자세를 낮추신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L선생님 이시대의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십니다.
류선생님도 그런 인품의 소유자이신것 같아
좋습니다.
글쓰기에도 열심인 선생님!
화이팅 입니다.
조정숙   14-04-08 07:07
    
요즘 교육현장엔
입시만있지
스승과제자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제자를대하시는
L선생님의 모습.
참으로 감동이네요
이은하   14-04-08 08:34
    
요즘은 스승은 스승의 자리가 없고 제자는 제자의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만 잘 하면 될것인데...
교사로 있는 제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교육현장 정말 심각하답니다
교사도 학생도 피해자랍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문제랍니다.
뭔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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