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주 토요일 12시.
가족이 약속된 장소에 다 모였다. 왁자지껄 시끄럽다. 언제 만나도 정답고 반가워 사사로움이 없다. 서로 안부를 대충 묻고 자리를 잡는다. 진정 희로애락을 함께하니 삭막한 세상에 가족은 큰 위안이다. 그래서 가족적이란 가장 정다운 말이 아닌가. 가족 행사가 없는 달은 넷째 주 토요일에 모여 외식을 다함께 한다. 외식 장소는 다섯 집 이 돌아가며 정하고 비용도 부담한다.
두 돌박이 어린아이부터 미수(米壽)의 어른까지 19식구가 모이니 몹시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여덟 명의 손자 손녀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니 다른 손님에게 폐가 될까봐 제 에미 애비는 전전긍긍이다. 특히 식사 시중드는 아가씨, 아주머니들에게 송구스럽다. 이럴 때 내가 할 일이 있다. 식사 시중드는 분들께 대략 외식 값의 10% 정도의 팁을 드리는 일이다. 팁은 식사비용 계산 후 애쓴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허나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뜻과 수고의 대가로 선불한다.
'팁'(tip)은 우리말로는 봉사료 또는 행하(行下)로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봉사(奉仕)는 영어의 'Service'에 해당된다. '서비스'의 어원은 라틴어의 '세르부스'(Servus)에서 비롯되었고 하인, 노예, 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굳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척박한 모래땅이 삶의 무대인 중동의 옛날 부자들은 거의 하인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이 하인들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주인집에 손님이 오면 대문간에서 바지에 묻은 먼지와 모래를 털어 주는 일이었다. 지체 높은 손님이 왔을 때는 물로 발을 씻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정성스런 봉사가 끝나면 손님은 하인에게 몇 닢 동전을 던져 주곤 했다. 이것이 계속되면서 관행이 되어 '팁(tip)'이 되었다고 한다.
팁은 행하적(行下的) 성격을 갖는다. 주인이 부리는 사람에게 품삯 이외에 인정으로 더 주는 돈을 말한다. 아래 사람의 여분 봉사에 대하여 수혜자는 고마운 마음으로 적은 돈을 자발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즉, 물질 또는 대가를 앞세우지 않고 봉사와 감사의 마음을 상호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사자나 수혜자 모두 즐겁고 흐뭇 하다.
그러나 오늘날 팁의 행태는 많이 변질되었다. 마음이 아니라 물질적 개념과 계산이 앞선다. 때문에, 주고받으면서도 많이 주고 덜 받은 것 같은 찜찜함이 노상 기분을 언짢게 한다. 레저,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서 팁의 성격은 고정 삯과 같이 요구불(要求拂)이 되어 가고 있다. 업태에 따라서는 거래가 보다도 팁이 더 많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사라지는 전통 미덕을 보면서 아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본래적 팁 문화를 생활 속에 되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사와 감사를 정겹게 주고받는 푸근한 인정이 오갔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식사 중에 어린아이를 돌보아주고 정성을 다해 음식 봉사를 해준 아가씨, 아주머니에게 더없는 감사를 드린다. 덕분에 한 달 동안 가족들 간 회포를 마음껏 풀고 기분 좋게 식사도 했다.
팁과 더불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마 덤을 받았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들 삶의 이색 지대, 성남시 모란 5일장. 없는 것 빼고 무엇이든 다 있다는 모란장을 가끔 찾는다.
기기묘묘한 갖가지 음성으로 손님을 불러 모으는 장수들의 활기찬 소리의 향연. 남녀노소, 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뒤범벅이 되어 비비적거리는 장터. 갖가지 냄새에 시달려 과부화 된 코. 삶의 최전선, 여기 삶의 진면목이 펼쳐진, 이 장 떡이 큰가 저 장 떡이 큰가. 모란 5일장은 최상의 정원이다.
여기서 나는 농사도구, 씨앗, 각종모종, 농산물, 산나물, 약초 등을 구입한다. 특히 아내는 산나물, 약초, 채소 등을 살 때 재미있어 한다. 물건 값이 일반 마트보다 싸기도 하고 말만 잘하면 덤을 듬뿍듬뿍 좌판 아주머니들이 잘도 주기 때문이다. 내가 "고만 주셔도 돼요" 라고 말리면 아내는 눈을 흘기며 욕심껏 받아 챙기고 흐뭇해한다. 그리고 승용차에 실고 오면서 좌판 아주머니가 후하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액 판매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덤'은 자동사 '더으다'의 명사형 '더음'으로, '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에서는 "제 값어치의 물건 밖에 조금 더 얹어서 주고받는 일" 이라고 덤을 설명하고 있다. 즉 '우수리'를 더하거나 빼버리는 뜻이 있다. 부담 없이 주고받는 넉넉한 마음이다.
시장이 거의 끝날 무렵에 채소를 사게 되면 덤을 더 후하게 받게 되는데 알뜰 주부들이 이 시간을 많이 이용한다. 근자에는 일식집에서 매운탕 덤을 주는 집도 있다. 회 뜨고 남은 뼈와 야채에 양념을 따로 싸준다. 작은 정성이 흐뭇한 정을 느끼게 하여 즐겁다. 그리고 두부음식 전문점에 가면 계산대 옆에 비지를 비닐 주머니에 담아 놓고 손님들에게 하나씩 집어 가게 한다. 이 또한 푸근한 인정을 집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시골 재래시장에서 토속 특산물을 살 때 덤이 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런 덤도 지나친 계산이 눈에 보일 땐 그 순수함을 잃어 마음이 언짢은 경우도 있다. 상인이 장사 속으로 손님을 끌어 이익만 챙기기 위한 덤은 덤이 아니라 장사 술이다. 산업 사회가 발전해 가면서 덤은 팁과 더불어 그 본래적 의미가 많이 퇴락(頹落)되어 가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출판기념회에 초대 받게 되면 저서(著書)를 책방에 가서 사
가지고 가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저서를 증정 받기를 바라고 받지 못하면 섭섭하게 생각하는 일이
상례다. 저자도 책을 줄만한 사람에게 주지 못하면 몹시 미안해한다.
한국인의 의식 구조상 덤과 공짜는 물적 타산보다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 노력이나 명분 없이 소득만 취하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 미덕인 덤은 후덕(厚德)함이어야 한다. 그리고 받는 염치(廉恥)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즐겁고 흐뭇해야할 것이다.
옛 우리 할머니들은 '백팔적덕(百八積德)'이라 하여 1년에 108번 남에게 무엇인가 주는 것으로 덕을 쌓고 그 적덕에서 낙(樂)을 얻었다고 한다. 해진 옷을 입은 남의 집 아이를 불러들여 이를 기워주거나, 마당의 사금파리를 주워 이들이 다치지 않게 한다든지, 이웃집에 갔다가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해놓고 온다든지... 세상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취하는 데서 낙을 삼기 쉬운데 우리 어머니들은 이처럼 남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정이다. 이것은 인간사 보통의 경우를 넘어선 즐거움이요, 덕행이 될 것이다.
팁과 덤은 우리들 서로가 주고받는 마음이다.
팁은 감사의 마음이요, 덤은 후한 인정이다.
이 둘은 정(情)을 나누는 것이다.
이 둘은 자발적 덕행(德行)이며 멋과 여유의 아름다움이다.
이 둘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상식이 존중되고 염치를 아는 멋진 사회. 팁과 덤의 마음이 살아 흐르는 사회.
우리가 일구려는 일류사회, 선진국가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