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새 밭 세 평
김 영 숙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 해오던 꿈 하나는 소일거리 장포(場圃)하나 갖는 것이었다. 올해 그 꿈이 이루어졌다. 가깝게 살고 있는 이웃이 가꾸던 밭 절반을 뚝 떼어주셨다. 다른 농사 일이 바빠 경작(耕作)을 다 할 수 없다면서.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땅을 거저 주어서 받게 되니 부자 된 기분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채마밭을 가꾸게 된 우리 부부는 몸도 마음도 바빠졌다. 평소에는 씨앗이 생기면 새싹채소를 길러먹거나 베란다 화분에 채소를 길러먹으면서 텃밭을 그리워하곤 했었다.
우리 밭은 산비탈에 있는 하늘바라기 밭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떠다 날라야 하고, 밑거름이 필요할 때는 무거운 퇴비 포대를 끙끙대며 들고 올라가야했다. 둘이 힘을 합쳐야 쉬웠기에 밭 가꾸는 일은 그이와 나의 공동취미 1호가 되었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의견을 모을 일이 많아졌다. 씨앗도 뿌리고 모종도 사다 심었다. 괭이와 호미도 구했다. 그렇게 세평 남새밭에 심은 것이 아홉 종이나 되었다.
땅 속 씨앗이 발아해서 고개를 쏙 내밀었을 때, 신기하고 묘했다. 흙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말랐지만 텃밭 풍경은 나날이 변해갔다. 솎아주기 할 만큼 새싹이 올라왔을 때 밭일에 할애하는 시간도 자연히 늘었다. 씨뿌리기를 촘촘히 한 탓이었다. 그 덕에 우리 집 밥상에는 날마다 모듬 채소 샐러드가 등장했다. 시장을 구태여 가지 않아도 매일 녹색빛깔을 접하니 눈과 입 마음까지 즐거웠다. 밭작물은 햇살과 마치 달리기 시합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한눈을 팔면 표정이 달랐다. 그런 날은 불청객의 방문도 잦았다. 그 덕에 호미로 김매기를 하는 날도 많아졌다.
하늘바라기 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이다 보니 비의 양이 적으면 까슬까슬하게 성격이 바뀌고, 단비가 흠뻑 내리면 보드랍고 야들야들하게 모양을 바꾸고 표정도 밝았다.
아홉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려고 텃밭을 오르내리면서 밭일 돌아가는 일머리를 점점 알아가고 중이다. 밭이 생기고 씨뿌리기를 하고, 김도 매어보고 내 손으로 직접 수확을 해 보면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 손길 준만큼 ,눈길 준 만큼, 사랑을 실어준 만큼 성장 하는 것이 밭농사임을 체득하고 있다. 요즘 눈을 뜨면 장포(場圃)부터 다녀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홉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얼마 전 남편과 힘을 모아 다시 밭갈이를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들깨 모종을 얻어다 심었다. 폭염의 더위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들깨를 보면 기특할 뿐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공동취미 활동으로 물도 떠다 나르고, 밭갈이도 하면서 열심히 밭을 가꾸어 갈 생각이다. 세평 작지만 의외로 수확하는 기쁨은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 곳에서 계절마다 변해가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장포(場圃);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채소 밭.
남새밭: 채소밭
경작(耕作) :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