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 (杞憂)
김영숙
벌 때문에 생긴 추억이다. .
어떤 봄날! 베란다 청소를 하려고 새시(sash) 창을 열었다. 창틀 구석진 곳에 두 눈 박이 쌍살 벌이 집짓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새시(sash)에 손가락 굵기 만하게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벌집을 그냥 두었다. 그리고 그 일을 깜빡 잊고 지내다가 가을이 되어 고추도 쪄서 말리고, 가지도 썰어서 빨랫줄에 널고, 골곰짠지 만들 무를 썰어 말리려고 채반에 담아서 베란다를 자주 드나들다가 두눈박이 쌍살 벌 두세 마리가 베란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초조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벌에 쏘일까 두렵기도 하고, 일을 하는데 방해도 되어서 방충망 밖으로 녀석들을 날려 보냈다. 벌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가니 봄에 창틀에서 기초공사를 하던 벌집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 세탁을 해서 빨래를 베란다에 내다 널면서도 벌들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다가 공처럼 커다란 벌집이 매달려 있고, 그 위에서 비행을 하고 있는 열댓 마리의 벌을 보니 공포감이 들었다. 호되게 한 방 쏘이지 않을까? 아니야! 미물이라고 쉽게 죽일 순 없어! 집에 벌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옛말도 있던데. 벌집을 떼어내야 돼? 말아야 돼?
제 세상만난 양 자유로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벌들이 밉광스럽기도 하고, 빨래를 늘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기도 해서 그때부터 내 머리 속은 기(杞)나라 사람처럼 복잡해야만 했다. ‘하늘이 무너져 세상이 멸망하고 죽을지 몰라. 막상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해도 해와 달, 별이 떨어질 수도 있고, 땅이 꺼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쩌지?’ (열자. 천서)
그때부터 벌의 움직임을 살피는 파수꾼이 되었다.
가을빛 고운 날 벌 한 마리가 베란다 안으로 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거실 안까지 잠입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 봐라 이놈. 내 영역을 침범을 했어. 순간적으로 드디어 때가 왔구나. 이제는 네놈들 맛 좀 봐라. 그리고는 벌집을 제거할 수 있는 무기를 찾았다. 거실 장위에 얌전하게 얹혀있던 홈키파가 눈에 들어왔다. 홈키파를 손에 잡자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홈키파 버턴을 꾹 눌러 벌집을 향해 뿌렸다. 치~익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뿌연 연기가 벌집을 뒤덮었다. 평화로이 날아다니던 벌들이 소란을 떨었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벌들이 부산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 다음 비장한 각오로 벌집을 살짝 밀었다. 아파트 정원으로 툭 소리를 내면서 벌집이 떨어졌다. 그렇게 벌과의 전쟁은 끝을 맺었다.
그 다음날 확인을 하려고 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새시(sash)에 어린 벌들이 붙어있었다. 새끼 벌들이 파르르 떨면서 창틀에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내 집. 내 집 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집을 잃고 발발 떨고 있는 새끼 벌들을 보면서 지나친 걱정이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제철거로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모습이 오버랩으로 지나갔다.
가을걷이철은 벌들이 한창 짝짓기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그래서 혼인비행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접살림을 차리고 새 살림을 내기 위해서 보금자리공사를 열심히 하고 있던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두 눈 박이 쌍살 벌은 그 때 한 창 산란기였다는 것을.
지나친 걱정이 강제철거를 강행했고, 어린 새끼 벌들에게 집 잃은 설움을 겪도록 헸다는 모성애가 발동을 하면서 후회가 되었다. 지나친 걱정은 안 좋은 추억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발발 떨고 있던 벌들의 모습이 자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 해 가을을 씁쓰레한 기분으로 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