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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우 (杞憂)    
글쓴이 : 김영숙    12-08-01 22:18    조회 : 6,479
                                               기우 (杞憂)
 
                                                                     김영숙
벌 때문에 생긴 추억이다. .
어떤 봄날! 베란다 청소를 하려고 새시(sash) 창을 열었다. 창틀 구석진 곳에 두 눈 박이 쌍살 벌이 집짓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새시(sash)에 손가락 굵기 만하게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벌집을 그냥 두었다. 그리고 그 일을 깜빡 잊고 지내다가 가을이 되어 고추도 쪄서 말리고, 가지도 썰어서 빨랫줄에 널고, 골곰짠지 만들 무를 썰어 말리려고 채반에 담아서 베란다를 자주 드나들다가 두눈박이 쌍살 벌 두세 마리가 베란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초조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벌에 쏘일까 두렵기도 하고, 일을 하는데 방해도 되어서 방충망 밖으로 녀석들을 날려 보냈다. 벌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가니 봄에 창틀에서 기초공사를 하던 벌집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 세탁을 해서 빨래를 베란다에 내다 널면서도 벌들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다가 공처럼 커다란 벌집이 매달려 있고, 그 위에서 비행을 하고 있는 열댓 마리의 벌을 보니 공포감이 들었다. 호되게 한 방 쏘이지 않을까? 아니야! 미물이라고 쉽게 죽일 순 없어! 집에 벌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옛말도 있던데. 벌집을 떼어내야 돼? 말아야 돼?
제 세상만난 양 자유로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벌들이 밉광스럽기도 하고, 빨래를 늘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기도 해서 그때부터 내 머리 속은 기(杞)나라 사람처럼 복잡해야만 했다. ‘하늘이 무너져 세상이 멸망하고 죽을지 몰라. 막상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해도 해와 달, 별이 떨어질 수도 있고, 땅이 꺼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쩌지?’ (열자. 천서)
그때부터 벌의 움직임을 살피는 파수꾼이 되었다.
가을빛 고운 날 벌 한 마리가 베란다 안으로 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거실 안까지 잠입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 봐라 이놈. 내 영역을 침범을 했어. 순간적으로 드디어 때가 왔구나. 이제는 네놈들 맛 좀 봐라. 그리고는 벌집을 제거할 수 있는 무기를 찾았다. 거실 장위에 얌전하게 얹혀있던 홈키파가 눈에 들어왔다. 홈키파를 손에 잡자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홈키파 버턴을 꾹 눌러 벌집을 향해 뿌렸다. 치~익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뿌연 연기가 벌집을 뒤덮었다. 평화로이 날아다니던 벌들이 소란을 떨었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벌들이 부산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 다음 비장한 각오로 벌집을 살짝 밀었다. 아파트 정원으로 툭 소리를 내면서 벌집이 떨어졌다. 그렇게 벌과의 전쟁은 끝을 맺었다.
그 다음날 확인을 하려고 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새시(sash)에 어린 벌들이 붙어있었다. 새끼 벌들이 파르르 떨면서 창틀에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내 집. 내 집 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집을 잃고 발발 떨고 있는 새끼 벌들을 보면서 지나친 걱정이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제철거로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모습이 오버랩으로 지나갔다.
가을걷이철은 벌들이 한창 짝짓기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그래서 혼인비행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접살림을 차리고 새 살림을 내기 위해서 보금자리공사를 열심히 하고 있던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두 눈 박이 쌍살 벌은 그 때 한 창 산란기였다는 것을. 
지나친 걱정이 강제철거를 강행했고, 어린 새끼 벌들에게 집 잃은 설움을 겪도록 헸다는 모성애가 발동을 하면서 후회가 되었다. 지나친 걱정은 안 좋은 추억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발발 떨고 있던 벌들의 모습이 자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 해 가을을 씁쓰레한 기분으로 보내야만 했다.

강희진   12-08-02 10:55
    
그랬군요.
저도 엊그제는 벌한테 서너방을 쏘여 부화김에
킬러를 들이붜서 벌집을 없앴는 데
같은 경험을 했군요...
다만 나는 그냥 속이 시원했을 뿐이고,
선생님은 글을 남기셨네요...
일상의 짤은 에피소드가 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
알았습니다....
     
김영숙   12-08-03 06:38
    
일상소재에서 늘 탈피를 해보고 싶답니다.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매달 글 올리는 곳이 있는데 지면이 짧다보니
제 글은 단조롭고 , 늘 일상이 소재랍니다.
이런 단점을 보안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사이버문학부   12-08-03 08:47
    
와우~! 새홈피의 기능을 활용할 줄 아는 분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댓글쓰는 분들은 이미 한국산문을 통하여 등단한 수필가들이십니다.
짧은 몇 마디를 위해 고심하는 시간이 공모한 글을 읽는 시간보다 길 것입니다.
댓글에 또 댓글을 달 수 있는 이 기능을 활용해주신 김영숙님이 그래서 반갑습니다.
               
김영숙   12-08-03 09:00
    
그래서 더욱 조심 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큰 용기와 부족함을 반가움으로 맞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날카로운 조언을 들으면서 부족함을
 메꾸어 가고 싶어집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임헌영 교수님을 존경하는 만큼 한국산문을 좋아해 보고 싶다는 소망또한 가져 봅니다.
 폭염의 날씨에 매미소리도 우렁찬 아침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문경자   12-08-02 20:09
    
벌을 주제로 글을 쓰셨네요.
벌은 어쩐지 공포 대상이 되어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됩니다.
위에서 15번째 (열자.천서)란 어떤 내용인지요.
벌과의 전쟁 킬러 한방으로 날려 버렸네요.
약간의 미안한 마음으로 가을을 보냈다는 마음이
엿 보입니다.

시골에서 벌초를 할 때마다 벌과 전쟁을 한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김영숙   12-08-03 06:22
    
열자천서편을 인용한 글이어서 그렇게 넣은 것이랍니다.
훌륭한 조언으로
저의 부족함을 메꾸어 가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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