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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글쓴이 : 이순종    16-02-23 09:37    조회 : 8,502

 소금은 바다의 사리다.
 바다의 피와 골육에 녹아 있다가 작열하는 태양으로 다비를 치르고 나면 쏟아져 나오는 영롱한 사리다. 검푸른 물속에 수줍은 듯 비밀히 배어 있는 새하얀 사리인 것이다. 세상이 뱉어낸 오탁한 삶의 찌끼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바다, 이 물을 받아 썩지 않게 하는 유일한 것이 소금이다. 더러움 속에서 피는 연꽃이 이와 같을까. 덕 높은 스님의 사리는 어쩌면 소금 결정체가 아닐는지.

 짠맛이 있어 소금이 있는 게 아니라 소금이 있어 짠 게 있다. 세상을 간하는 것이 소금 말고 또 무엇이 있으리오. 소금은 바다에서 와서 산천초목 어떤 것과 곁들어도 찰떡궁합이다. 산야(山野)에서 나는 수많은 풀에 스미어 나물을 맛깔스레 간한다. 뿐이랴. 한낱 모둠 풀에 불과하던 배추를 김치로 불리어지게 하는 것도, 야생의 열매를 장아찌로 농익게 하는 것도 다름 아닌 소금의 업적이다. 콩과 소금의 만남은 가히 숙명적이다. 천생가연인 둘의 절묘한 하모니는 천년 명품 간장을 만들어 냈다.

 소금에 절여 잘 익은 음식은 오래 묵을수록 그 맛을 점점 심오하게 한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타인을 빛나게 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소금은 애초부터 주인공이기를 마다한다. 주연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다. 이 얼마나 이타적 삶의 표본인가. 누구나 별이 될 수는 없다. 묵묵히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 같은 삶. 사람이 소금 같은 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금이 아주 귀한 시절, 가난한 사람은 염분섭취가 늘 부족하였다. 어린 자식이 밤에 실수로 지도를 그리는 날이면 머리에 키를 씌워 이웃으로 소금을 꾸러 보내는 풍속이 있었다. 콩팥이 허해서 생긴 야뇨증엔 천일염이 최고의 약이다. 당시엔 ‘금 중의 금’이었던 소금을 꾸어다 약으로 쓴 지혜로운 우리네 풍습이었다.

 소금(素金)은 백금(白金)이다.
 ‘하얀 돈’인 것이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시대에는 화폐로 유통되어 노동자나 병사들의 급료로 지급했다고 한다. 그것을 ‘쌀라리움(salarium)’이라고 일컬었다. 오늘날 월급쟁이인 ‘샐러리맨(salary man)’은 이 말에서 나왔다. ‘소금을 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소금을 차지하기 위해 무역과 전쟁과 혁명이 벌어졌다. 주몽과 소금산, 간디의 소금 행진, 소금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

 씻김굿은 사실 소금 굿판이다. 부정한 곳에 뿌려 액운을 멀리하고 잡귀를 쫓아주니 소금은 수행 높은 무녀 같다. 일본에서는 씨름꾼이 정화의 소금을 휙 뿌리고 나서 씨름판에 오른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소금은 ‘정화’의 의미가 있다. 과거 세례 때에는 영세자 입에 넣어 ‘정화염(淨化鹽)’으로 쓰였다. 이쯤 되면 소금은 귀물을 넘어 신물(神物)이 아닐까 싶다.

 우리 민족이 소금의 문화라면 서양은 설탕의 문화다.
 우리는 소금을 가장 잘 활용한 으뜸 민족이었다. 소금으로 절임 문화를 발달시키고 간장ㆍ된장ㆍ고추장 등 장류를 꽃피웠다. 장맛은 대를 이은 가풍이었고, 집집마다 장 단지는 신줏단지였다. 장독대는 정화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무병장수를 비손한 할머니의 기도처였다. 소금을 모든 음식의 고갱이로 삼았고, 그 음식을 먹은 식솔들이 무탈하길 빌었다. 우리네 할머니는 장으로 모든 병을 물리친 신앙 깊은 신녀(神女)요, 가중(家中)  의 의술가였다. 장이야말로 해독제요, 방부제요, 소화제요, 우황청심환이었다. 단언하건대 만병통치약이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장독대에 장이 익어가는 걸 보면서 은근과 끈기를 훈습(薰習)하지 않았을까.

 반면 서양은 설탕의 문화다. 일찍부터 사탕수수에서 당을 뽑아냈던 그들은 설탕을 중심으로 음식문화를 발달시켰다. 서양식 소스는 대부분 설탕에 의존한다. 혀끝을 달콤하게 하는 즉흥적 음식이 설탕의 문화이다. 우리네가 메주콩에 소금을 쳐서 된장을 빚어냈다면, 서양은 카카오콩(cacao bean)에 설탕을 버무려 초콜릿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어떡하면 짭짤하게 먹을까?’ 고민했다면, 그들은 ‘어떡하면 달콤하게 먹을까?’에 힘썼다.

 소금이 숙성요리요 기다림이라면, 설탕은 속성요리요 즉효성이다. 소금은 주변인에 만족하지만, 설탕은 주인공이어야 만족한다. 소금은 피를 맑게 하고 설탕은 피를 끈적이게 한다. 설탕의 뒤태는 뚱뚱보의 모양이지만, 소금은 나풋나풋 날렵한 여인네 몸매요, 사내의 근육질 몸매다. 소금이 뼈를 튼튼하게 하니 자연히 군살이 붙지 않는다.

 나는 우리 집에서 ‘짠돌이 아빠’로 통한다. 검약이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사는 나에게 아내가 붙여준 썩 달갑잖은 훈장이다. 흔히 세간에서 자린고비를 보고 ‘짠돌이’라 하거니와 소금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 말의 본령은 소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소금 함유량에 빗댄 말이다. 값비싼 소금이 음식물에 미량 함유된 것처럼 인색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짭짤하다’는 말은 소금의 본령을 짚은 말이다. 쏠쏠한 재미를 보았거나, 실속이 있을 때 쓰이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네 어른들은 소금을 추앙하였다. 그러니 어찌 짭짤한 소금 인생을 꿈꾸지 않으리오.

 요즈음 ‘짠맛은 성인병’이라는 편견 때문에 소금이 마치 성인병의 원흉인 양 탓한다. 과거엔 소금을 얻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으나, 오늘날엔 소금을 덜 먹기 위해 전쟁을 한다. 소금이 몸에 나쁘다고 함은 왜곡하여 만든 가공 정제염을 말한다. 편리만을 좇는 현대인의 자승자박이다. 천일염은 바닷물에서 물기만을 말려 소금을 얻지만, 가공염은 바닷물의 짠 성분만 끌어내어 소금을 만든다. 화공약품이다. 자연염인 천일염은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식품이며 보약이다.

 사람이 병이 나서 링거를 맞을 때도 그 수액은 다름 아닌 소금물이다. 생리식염수가 환자의 흐물흐물한 병든 세포를 싱싱하게 한다. 뿐이랴. 소금기가 많은 심장엔 암이 거의 없다. 심장은 염통이라 일컫는데 ‘소금통’을 말한다. 소금이 있는 곳에 싱그러운 생명이 움트는 것이다. 어항에 소금 몇 개만 넣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시들한 물고기가 얼마나 힘차게 헤엄하는지.

 세 푼*의 소금! 바닷물 속이 썩지 않는 이유다. 미소한 양으로도 그 너른 바닷물을 살아있게 한다. 사실 소금 없는 세상은 온통 부패하여 버리고 말 것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이 소금 법칙은 통용된다. 가정에서, 모임에서, 국가에서…. 소금과 같은 존재들이 있어 그 조직을 온전하게 유지한다. 사람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아흔일곱 개의 그릇된 생각을 세 개의 올곧은 생각이 버팀목 되어 우리의 영혼을 지탱해준다.

 태초에 사람은 바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태아의 양수는 다름 아닌 소금물이다. 인간의 체액(體液)도, 혈청(血淸)도 소금물이다. 사람은 소금물에서 열 달간 유영하다 태어난다. 죽어서도 칠 할이 넘는 몸의 물 기운은 흘러흘러 바다로 갈 것이다. 소금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던 셈이다.

 사람은 소금으로부터 와서, 소금과 더불어 살다가, 다시 소금으로 되돌아가는 소금인형이 아닐까.

*세 푼: 3%


김혜정   16-02-24 23:17
    
이순종선생님 반갑습니다.
수필공모방에 처음 올리신 글인데 처음 쓰신 글은 아니신 것 같군요.
군더더기 없는 글의 도입부를 시작으로 하여
마지막까지 어느 한 곳에도 막힘이 없이 유연하게 흐르는 문장에다
내용 또한 알차기 그지없습니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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