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즈음하여 동생과 나는 벌초를 하러 갔었다. 기계를 다루는 데 서투른 나는 예취기로 동생이 풀을 깎아 놓으면 갈고리로 쓸어 모아 치우고 간혹 잡목 등이 있으면 낫으로 정리하는 곁 일을 하였다. 명절이 임박한 까닭에 하릴없이 억지 춘향이 마냥 꾸역꾸역 하던 터라 왠지 하는 일이 싫증이 났다.
백부님 묘소를 정리하면서 기어이 사달이 났다. 예전부터 땅가시나무가 성하여 예취기로 초벌치기만 하고 낫으로 정리해야 하는 일이 많은 묘소였다. 땅가시나무를 이리저리 훑고 베고 끄집어내다가 어느 땐가 따끔거리는 게 있어 장갑을 벗어보니 손가락 관절부위에 잘 띄지도 않는 땅가시가 박혀서 까슬거렸다. 가시를 뽑아내려면 바늘 따위가 있어야 할 판이고 내심 ‘저리 조그마하니 별문제가 있으랴’ 하며 무시하고 하던 작업을 마저 하였다.
며칠 후 가시 찔린 손가락 부위가 불룩 튀어나오면서 어디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기 시작했다. 아차!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그제야 가시가 생각났다. 바늘로 살 속을 헤집어 봐도 가시는 보이지 않았다. 가시가 살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일상에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가도 손을 스치기만 하면 어찌나 쌔름하던지 당최 죽을 맛이었다. 갑자기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릴케가 생각나는 건 또 뭐람. ‘혹 내가 이 가시 땜에 손을 절단해야 하지 않을까? 실기해서 가시 독이 전신에 퍼져 릴케처럼 죽는 건 아닐까?’ 너무 오버 떠는 것은 아닌지
급기야 가시에 찔린 부위가 명태눈깔 하나 넣어놓은 것처럼 부어오르자 아내는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라고 채근이 여간 아니었다. 가시에 찔린 게 아니라 뼈에 이상이 있다는 나름 해석을 덧붙여가며 말이다. 딴엔 뼈에 이상이 있는 듯처럼 팅팅 부어오르니 더럭 겁이 나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 이거가지고 병원은 무슨 병원 조금만 있으면 부기가 빠지겠지.’ 아무 일도 아닌 척 해보지만 내심으론 걱정이 커져만 갔다.
어느 날 저녁, 도시 안 되겠기에 뜸을 뜨기 시작했다. 침·뜸을 배운 바 있는 나는 부은 자리에 다장구(多長灸) 하였다. 뜸을 100장정도 뜨고 나니 재만 남은 시커먼 뜸자리가 굴뚝같다. 화산이 폭발한 산처럼 보였다. 젠장, 하필이면 오른손이람. 이 손을 들고 사람들과 악수하고 물건을 건네고 하여야 할 판인데 이 또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피부질환자처럼 보일까 봐 지레 걱정이 되고 행동이 소심해지고 만다. 그래서 살색 테이프를 붙이고 다니곤 했는데 공기가 막히는지 짓물러버린다. 그러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몇 번의 뜸을 더 떴다. 조그만 가시 하나가 이리도 일상을 불편하게 하다니. 석 달째 즈음 지나서야 겨우 조금씩 부기가 빠지면서 통증도 약해졌다. 뜸자리에 홍조 띤 화상 자국만이 푯말처럼 가시 박힌 표식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아주 자그만,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잘은 가시 하나로 된통 당한 무려 세 달여의 시간을 돌이키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시 하나가 이럴진대, 사람들과 만나면서 혹여 무심히 던진 말이 상대에게 몇 달, 몇 년의 세월을 가는 생채기를 주진 않았는지, 아니 평생 지울 수 없는 대못을 박아대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란 위인은 원래 상냥하고 거리가 먼 인물인지라 본의 아니게 말실수가 잦다. 툴툴거리며 상대에게 대꾸하다 보면 밤송이처럼 날 선 가시로 상대를 할퀴곤 했다. 지근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집에 돌아와 충고하였다. 당신은 홀어머니, 형제들 간, 아이들과의 대화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가시나무를 휘두르며 얘기하는 것 같다고. 좀 다정하게 말하라고.
혼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와 말다툼 끝에 아내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일이 생각났다. “너 같은 것과 사는 내 인생도 참 폭폭하다.” 그야말로 대못으로 쑤셔 박는 말이었다. 젊은 날 술김에, 홧김에 그런 말을 했지만, 뱉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십여 년을 잊고 지냈는데, 아내는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아내는 그때 그 말을 상기시켰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그녀는 수많은 시간 동안 내 말이 쇠가시가 되어 찔린 듯 아리고 쓰라렸을 것이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였다. 어디 나의 못난 말실수가 이것뿐이겠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숱한 가시 달린 말들을 사람들한테 쏘아대지 않았을까 싶어 부끄럽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그들께 미안했다.
말은 어쩌면 칼보다 더 무서운 것 같다. 작은 가시도 제 몸에 박히면 몇 달을 고생하는데 말로서 박힌 가시는 영영 가시지 않는다. 치유할 연고도 없다. 보살행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리라. 봉사한다고 이곳저곳 기웃거릴 게 아니라, 수행한답시고 이 절 저 절 나다닐 게 아니라, 제 가시 돋친 말버릇부터 고쳐야 할 것을. 밤송이 같은 나의 말들을 대체 어찌해야 하노.
문득 당나라 화엄종의 무착스님이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남겼다는 게송이 생각난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面上無瞋供養具, 면상무진공양구)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裏無嗔吐妙香, 구리무진토묘향)
성 안내는 그 마음이 참다운 보배요 (心裏無嗔是珍寶, 심리무진시진보)
티 없이 맑은 그 마음이 언제나 부처라네 (無染無垢是眞常, 무염무구시진상)
이 게송을 눈에 쉬이 닿는 곳에 걸어두고 조석으로 읊조리면 밤송이 같은 내 말이 감귤처럼 매끄럽고 향기로워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