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단풍에 대한 단상
<산>
얼마전 뉴스를 보니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나왔다. 해외여행을 나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십중팔구 등산복 차림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해외여행 뿐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등산복 입은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산과는 거리가 먼 바닷가에서도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닌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물론 등산복 패션이 편하기도 하고 디자인이 잘 나오기도 하고, 유행이기도 하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등산복 사랑은 우리 민족의 산 친화적 DNA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산 친화적 민족. 한반도가 백두대간에 축을 두고 있기도 하고 아름다운 강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국가에도 백두산, 남산이 등장한다. 심지어 웬만한 교가나 군가에도 학교나 군부대 주위의 산 이름이 등장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초등학교 교가의 첫 구절은 잊지 않았다. “도덕산 산 줄기..” 유일하게 기억하는 가사이다. 초등학교 근방에 있는 산 이름이 도덕산이였다. 조선시대 건국자들은 수도를 정하면서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북한산 남쪽에 서울을 건설했다. 수도를 정하는 데도, 궁궐을 짓는데도 산을 생각하였다. 물론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자만, 우리나라 사람을 산과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등산복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민족성으로까지 비약한 논리적 염치에도 불구하고 사족을 붙이고자 한다.
산 친화적 민족이라는 단어에는 뭔지 모를 서글픔이 있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의 무자비한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쳐들어왔고,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 죄없는 군사, 백성들은 얼마나 배고팠으며 추웠는가. 남한산성하면 등산코스, 자연경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 그 몇백년전 추웠던 겨울, 추위와 배고픔에 미치도록 힘들었고 헤어진 엄마 생각에 매일같이 울었던, 그리고 청군에 의해 언제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지 몰라 벌벌 떨었던 그 나이 어린 병사의 눈물이 생각나게 되는 것이다. 그 민족적 서글픔의 무대가 산- 남한산이다.
웅장한 산만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조그마한 야산을 차지하기 위해 같은 민족끼리 수많은 포탄과 총알을 날리고 사람 목숨도 날리었다. 그러한 나날이 지나고 그 야산은 나무가 다 뿌리 뽑히고 풀도 불타버려서 그냥 민둥산이 되었다. 그 작은 동네 야산은 나중에 백마고지 라고 불리게 된다.
즐비한 등산복 브랜드. 휴일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평상시에도 등산복을 입는 트랜드. 일부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은 다들 등산가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유야 어떻든 산 친화적 민족이다. 그리고 그 등산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가고 심지어 해수욕장에도 갈 것이다.
<단풍>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가을에 단풍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산을 좋아하지만, 바쁜 하루 살이에 올해는 산에 가지 못했다. 심지어 동네 야산에도 말이다. 늦가을 산행. 단풍구경. 단풍을 바라 보며 마시는 진한 블랙커피. 남자의 로망이다.
단풍을 관람하기에 좋은 늦가을만 되면 전국의 유명 산마다 관람객으로 붐빈다. 등산을 하러 간다고 말을 많이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관람을 하러 가는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결국은 산에 올라, 산이 선사하는 가장 따끈따끈한 최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다. 단풍은 물론이거니와 나뭇가지, 이름조차 모르는 별의별 꽃들, 다람쥐, 바위들 이런 것들이 다 주연배우이다. 그리고 산에 오른 이 사람들은 모두 관람객이 되는 것이다.
봄의 새싹도 아름답고, 여름의 푸르른 잎사귀도 아름답지만, 우리 인간들은 왜 낙엽이 되기 일보 직전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겨울을 나기 위해 본줄기인 나무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되는- 바로 죽음을 눈 앞에 둔 저 단풍을 좋아할까.
인간들은 늙은이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청춘을 예찬한다.
인간들은 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작품, 신상품 을 예찬한다.
그런데 유독 자연만은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500년된 느티나무를 마을의 보물이자 수호신이라 하고, 수 만년 된 동굴을 지구의 역사이자 교과서라고 한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인생 . 즉 늙음도 아름답지 않을까. 저 늙은 잎파리인 단풍들이 아름다움의 최정점이듯이, 우리네 늙은 인간들도 ? 절대자가 관람객이라면 ? 아름다움의 극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숙미. 국어사전에는 “원숙하다”라는 낱말을
1. 매우 익숙하다. 2. 인격이나 지식 따위가 깊고 원만하다
라고 풀어놓았다.
인생 살이에 매우 익숙한 사람.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지식과 오랜 고초와 사건를 겪으며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 그러한 연륜이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원숙미가 있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러한 원숙미 있는 늙은이를 감히 단풍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비록 피부는 주름지고 삭아졌지만, 백발이거나 대머리이겠지만, 그리고 육체는 쇠하여지고 어쩌면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원숙미 있는 늙은이의 내면은 단풍과 같이 형형 색색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보기 위해 산을 누비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이 원숙한 늙은이의 내면과 마주하고자 할 것이다.
나도 주제 넘는 소리지만, 세월이 흐르고나면, 이러한 단풍과 같은 늙은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