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와 운동회
초등시절 추석전후 가을 운동회를 회상하니 세월이 벌써 60년이 흘렸다. 들뜬 마음에 운동회 전날 잠 못 이루고 그 시절은 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축제다. 3-4개월 전에 등교 길에 씨를 뿌려 논 것이 온 동네는 어느 새 코스모스 큰 물결이다. 올해는 청군 백군 중 누가 이길까? 하얀 코스모스 많이 피었느냐? 분홍 코스모스가 많이 피었느냐? 학교와 떨어진 동네에 사는 나는 동네 어구에 모여서 한 줄로 2킬로 정도 된 통학 길을 등교했었지. 학교를 오고가면서 코스모스를 가꾸는 할당한 구역이 있었고. 자기 반의 코스모스가 잘 자라도록 물도 주고 풀도 뽑아 주며 그 꽃의 자람을 지켜보고 가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 학교 오는 날에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그 곳을 달려갔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안개가 낀 아침이면 함초롬히 이슬 머금고 우리들을 반기는 코스모스가 기억나곤 한다.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날이면, 그 계절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꽃은 코스모스를 단연코 말 할 수 있다. 도심을 조그만 벗어나더라도 길가에 어여쁘게 제 모습을 드러내며 ‘나 여기 있소’자기 표현을 조용히 나타내는 코스모스를 흔히 볼 수 있다. 군락을 이루는 게 특징이므로 조그만 무리를 지어 있어도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것이 코스모스다. 바람이 산들산들 거리면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날씬한 몸매로 아름답게 춤추는 것이다. 더욱 나 이 꽃은 가을의 감성을 자극시키고, 하늘을 향해 활짝 얼굴을 내밀며 사랑스럽게 자기를 뽐내고 있지 않는가? 이 꽃의 꽃말(※ 꽃의 특징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 한 말) 은 소녀의 순결, 순정이다. 앞뒤 다툼이 없이 함께 어울려야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네 삶도 저 꽃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양지 바른 가을 들녘을 상상해 보라. 운동장은 시야가 트인 논들과 경계를 이루고 그 사이에 코스모스 길이 있었다. 거기에 햇살까지 맛깔스럽게 쏟아지는 정경을 어찌 잊히기가 쉬운 일인가? 커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만, 이 꽃은 허리 가느다란 여인처럼 약한 바람에도 하느작거렸다. 그 자태는 꿈속에 나타난 여인상이었다. 책이나 영상을 보면 쓸 만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꿈에 그리는 여인도 만날 수 있으련만 하필 이 꽃을 통하여 그런 이성을 연상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거의 끝나 가는 데 운동장을 마무리 하면서, 뭇 사람들에게 짓밟힌 코스모스 모습을 기억한다. 꼭 어른이 되면 그날 내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의 그 황량하고 쓸쓸했던 기억과 이 꽃을 소재로 글을 남기리라 다짐한 바가 있다. 그날 오후 학교 운동장은 어지러이 널어진 <코스모스>와 아직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으나 줄기가 상한 채로 덜렁거리는 <코스모스>, 그 생명을 다 했으나 간신히 살아남아 아직도 내가 있다는 자기 존재를 살며시 표시하는 꽃. 사람은 망각의 존재이라는데, 왜 나는 지금까지 반세기가 지난 운동장의 그날의 짓밟힌 <코스모스> 잔영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상처 많은 꽃들이 가장 향기롭다"고 했지 않는가. 어쩌면 그날 그 꽃의 상처가 나에게 더 진한 기억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허긴 그렇지. 그날 짓밟힌 코스모스가 없었다면 구태여 지금 내가 그 꽃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어느새 해가 지는 가을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오래 살까 겁이 난다. 갈 때 소리 없이 가야지. 주위를 성가시게 하거나 자식들 신세 지지 말고. 그 가을날 노을에 비치는 코스모스처럼 초라하지만 아름답게 가야 하는데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될까 싶다. 그때는 사는 것이 어려운 때라 중학교 진학이 10% 내외인지라 남자들이 10명이면 여자들은 그 반 토막이었지. 그래서 그날 운동회는 마지막 학창시절이 될지도 모를 아쉬운 마음으로 우리 모두 허허했다..
작년 시월 고교 동창 소모임에서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을 갔다. 하늘마저 전형적인 가을에다 흰 뭉게구름 적당히 깔아놓으니 제 격이다. 흐드러지게 핀 넓은 코스모스 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흰색과 진 노-란 황색 멋지게 어울려 잠시나나 발을 멈추게 한다. 다양한 꽃 색깔에 반하고 향기에 취해 머물던 중 매년 추석을 앞둔 이맘때 어릴 적 시골 풍경과 잊지 못 할 그 가을 운동회. 추억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기에 아득하고 그립다. 그 해 가을 운동회와 짓밟힌 코스모스. 내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대부분 직장에서 은퇴하여 뒷방 신세가 된 친구들. 그 시절에 어려워서 분명히 재주나 열성이 있음에도 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던 가난한 내 초등학교 친구들. 가을 뙤약볕도 잊은 채 유일하게 단 하루의 축제를 위하여 운동회 예행연습을 했던 천진 한 검게 탄 얼굴들. 다시 돌아 올 수도 볼 수도 없지. 어느 핸가 코스모스가 만발했던 정든 학교는 찾아보니, 폐교되어 온갖 잡초만 우거지고 그 꽃이 흐느적거리는 운동장은 사람이 흔적이 없는 땅이 된지 오래다. 허지만 어딘가 살고 있을 그 동무들. 아니 몇몇은 무엇이 급했는지 일찍 저 세상으로 갔고.
떨어진 코스모스와 꽃잎의 모양에서 내 삶의 여로를 읽어야겠지. 한 때는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 밤까지 부지 럼을 떨고 무언가 이룰 것 같아 매달러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세월 이길 장사 없고 그 속에 순명해야 할 차례다. 그날 운동장에서 뭇 사람들에 짓밟힌코스모스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날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의 어려움과 꽃의 처참한 무너짐은 어린 내 가슴에 까닭을 알 수 없는 막연한 슬픔 같은 간직하게 만들어 평생 마음에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을 남겼다. 똑같은 꽃 감상도 누구는 기쁨으로 가득한 추억을 지니고 어느 누군가는 아픈 상처를 감싸 안은 채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이한다. 나에게 그 해 가을 운동회에서 짓밟힌 코스모스는 슬픔과 이별과 쓸쓸함을 오랫동안 안겨 준 것이 분명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