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가닥 딸가닥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눈을 떴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아버지는 벌써 동네 품앗이를 나가시고 어머니는 늦지않게 조반을 지으시느라
여념이 없다
벽시계의 묵직한 종소리가 수탉을 대신해 새벽 6시를 알린다
부엌의 아궁이에 장작이 지펴져 어둠속에서 불꽃놀이라고 하듯이 활활 타 들어간다
가마솥은 그 위세에 못이겨 부르르 떨며 김을 내뿜고 연기와 밥솥에서 나온 수증기로 뒤범벅이 된
부엌은 희미한 전등불 주위에 무지개 비슷한 것이 끼어 있었다
아마도 수증기 탓인가 보다
그런 탁한 공기 속에서 밥을 지으시는 어머님께 속도 어지간히 썩히고 투정부리던 일이 얼마나
철부지 였던가
어머님의 은혜는 하해와 같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 말뜻을 이해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제와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군입대를 앞두고 부모님과 헤어질것을 생각하니 철이 드는것 같다
모락산 사방공사에 군입대를 앞두고 친구와 일을 하러나갔다
수해로 인해 산사태가 난 산에 아카시아나무를 심는 일이 였다
품삯은 만원이란다
그까짓 일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군입대하기 전에 어머니께 드릴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다녔다
동네 할아버지들은 물론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모두 동참했었다
품을 판다는일이 처음이였던 내겐 스물한살의 기억속에 대견했다
품삯을 받아 어머님께 멋진 반지를 입대 선물로 해드릴 생각을 했으니 더욱 대견했다
괭이를 들고 산중턱에 있는 아카시아 묘목을 들고 산사태가 난 꼭대기로 운반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산중턱은 아직도 새벽이건만 동쪽을 등지고 솟은 모락산은 반나절이 지나야 해가 뜬다
하지만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동네는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문득 양지바른 우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어른들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음지쪽에 사는 처녀들은 얼굴이 예쁘고 양지쪽에 사는 처녀는 얼굴이 밉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음지쪽 처녀는 양지쪽을 바라보면 얼굴 표정이 환하고 그 반대로 양지쪽에서
음지쪽을 볼때 저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되서라는
물론 농담조로 한말이긴해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작업반장의 지시에 일정한 간격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심어 나갔다
아저씨 사방공사에 왜 아카시아 나무를 심어요 하자
뿌리도 깊게 내리고 빨리 자라서 산사태를 막아주기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시아 나무에 긁히고 찔리고 산사태로 인한 산이 지반이 약해져 무너져 내려
조심조심 나무를 심었다
휴식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으니 작업반장이 휴식시간을 알린다
산골짜기 개울 옆에 가마솥을 걸고 맑은 개울물을 받아 국수를 삶고
참으로 나온 막걸리 한잔이 힘을 준다
친구야 내가 군대 생활 하는 동안 우리집 부모님도 좀 챙겨라
알았다 자슥아 염려말고 잘 다녀와라 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땅을 파느라 삽질과 괭이질을 많이 한 탓에 손바닥에 물이 잡히고 터져 쓰라렸지만
군대가면 더 힘들거라는 생각에 참고 일했다
문득 부모님은 이런일을 이보다 더 힘든일을 하시면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을 마치고 내려올때 해는 이미 붉게 물들고 내게 잔잔히 무언가를 말해주고 싶은듯 아쉬움과 못다한
이야기를 노을에 남긴채 멀어져 버렸다
벌써 30년이 흘러가버린 그 시간속에 내 자신을 뒤돌아보니 그 청춘의 시기가 나에게 산 교훈이 된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께 선물한 반지를 막내아들이 해준거라면서
자랑하고 다니시던 어머니의모습이 그립고
내가 심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수해 입은 산사태의 자리를 빼곡히
채워주고 자라서 이젠 봄이면 아카시아향과 꿀벌들의 향연이 펼쳐지는곳을 바라보니 그 시절이 문득 떠 올랐다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그곳을 추억에 젖어 아내와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위틈에 앉아서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해주자
아내가 야~ 당신이 심은 나무라서 그런지 뿌리가 깊게 박혔네
우리도 저 나무들 처럼 뿌리가 깊게 열심히 살자 합니다
그래 힘들고 지칠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알콩 달콩 살아갑시다
하고 아내의 손을 꽉 잡았던 작년 가을이 생각납니다
지나간 시절을 뒤돌아보면 언제나 힘든 기억 뿐이건만
나에게도 멋진 추억이 있다는것을 새삼 느꼈답니다
그 시절을 뒤돌아 보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의 후반을 맞이해야겠습니다